
국경을 넘는 범죄가 증가하면서 우리 정부가 외국에 정식 요청한 형사사법 공조 건수가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범죄의 전자화와 비대면화가 심화하면서 국내 수사기관이 해외 사법당국에 수사나 증거를 요청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이다. 자본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해외로 유출된 범죄수익 환수 필요성이 커지면서 공조 역량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형사사법 공조는 경찰·검찰 등 국내 수사기관이 법무부를 통해 해외 사법당국에 수사 협력을 요청하는 절차다. 이렇게 확보한 자료는 국내 수사·재판 절차에서 적법한 증거로 쓰인다. 공조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와도 상호주의(국가 간 동등한 대우)에 따라 요청할 수 있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공조를 요청한 국가는 69개국에 달했다. 해외의 공조 요청도 2019년 이후 매년 200건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공조 요청 증가의 배경에는 이메일 사기, 해킹, 보이스피싱 등 초국가적 범죄 확산이 꼽힌다. 이들 범죄는 범죄자가 국내에 거주하지 않아도 해외에서 원격으로 벌일 수 있어 국내 수사기관의 정보 수집이 대폭 제한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IP 등 인터넷 자료 요청이 가장 많고, 계좌 정보나 범죄인 소재 확인 요청도 상당하다"며 "미국·일본·중국·영국·싱가포르가 주요 요청국"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구지검 강력범죄수사부(소창범 부장검사)는 730억원 규모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에 관여한 A씨를 해외 공조로 작년 11월 구속 기소했다. A씨는 2022년 6월부터 2023년 11월까지 필리핀에서 도박 자금 환전 등 업무를 맡은 콜센터를 운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해당 도박사이트 총책과 운영진 17명을 먼저 기소한 이후 도피한 A씨 검거를 위해 필리핀에 공조를 요청했다. A씨는 현지에서 검거돼 같은 해 10월 송환됐다.
B씨는 2020년 1.5㎏짜리 금괴 12개(13억원 상당)를 특수 제작한 전동공구에 숨겨 일본으로 빼돌리다 일본 세관에서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데 이 사건은 2021년 9월 1심에서 법원이 검사의 기소 자체를 기각하는 '공소기각' 판결을 했다. 특가법 적용을 위해선 금괴가 5억원 이상임이 입증돼야 하는데, 순도 확인이나 감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즉각 항소했고, 2023년 7월 일본과의 공조로 일본 법원 재판관이 작성한 차압 허가장과 감정서를 확보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를 검토한 서울고법과 대법원은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인천지법으로 환송했고, 파기환송 재판부는 감정서에 따라 금괴가 순금으로 확인돼 5억원 이상임이 증명된다고 봤다.
해외 공조 역량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범죄수익이 해외로 유출될 유인이 크기 때문이다. 차명계좌에 강력한 형사처벌이 적용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주요 영미권 국가는 금융 규제가 비교적 느슨한 편이다. 한 외국 변호사는 "영미법계 국가는 분쟁이 시작되면 당사자가 법원에 계좌 추적부터 요청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도 공조 네트워크를 대폭 강화하는 추세다. 한국은 1992년 호주와 처음 형사사법 공조 양자조약을 체결한 뒤 미국·프랑스·일본 등과 조약을 맺었고, 지난해에는 싱가포르까지 포함해 35개국과 협정을 체결했다. 지난 4월 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유럽연합 형사사법협력기구(유로저스트)와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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