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전시하기 위한 미술관은 전 세계에 10곳 정도 있다. 그중 피카소의 작품을 시대별로 모두 볼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컬렉션을 보유한 곳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립 피카소 미술관이 유일하다. 이 미술관은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 있는 ‘미술품 물납제’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 1973년 피카소 사망 이후 그의 작품과 재산을 물려받은 6명의 상속인은 막대한 상속세를 낼 돈이 없어 약 5000점의 피카소 작품을 세금 대신 냈다. 프랑스 정부는 이때 확보한 작품을 기반으로 1985년 파리 시내에 피카소의 삶과 작품 세계를 기리기 위한 미술관을 건립했다.전문가들은 국내 미술품 물납제가 선진국과 비교해 지나치게 엄격하게 설계됐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현행 상속증여세법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이 상속받은 미술품 자체에 부과된 상속세액의 한도 내에서만 해당 미술품으로 물납이 가능하다. 가령 총상속세액이 100억원인데 그중 미술품에 대한 세액이 10억원이라면, 오직 10억원의 세금 납부를 위해서만 미술품을 사용할 수 있다. 그것도 상속세 납부세액이 상속재산 중 금융재산의 가액을 초과하는 경우에만 물납이 허용된다. 미술품에 대한 가치평가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해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도 문제다. 현행 평가 시스템은 관할세무서, 문화체육관광부,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미술품 물납 심의위원회를 거치는 다단계 구조로 이뤄져 있다. 문제는 이 과정 전반에 ‘국고 손실’에 대한 우려가 깊이 배어 있어 납세자 입장에서는 작품을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불리하게 평가받을 위험이 크다고 판단하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은 지나치게 엄격하게 설계된 제도 탓에 신청률이 저조하고, 이는 제도 무용론을 정당화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있다. 미술품 물납제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미술품에 부과된 세액뿐 아니라 전체 상속세액 납부에 미술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금융재산이 부족해야만 물납을 허용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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