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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는커녕 손으로 뜯어봐야”, XBRL 데이터 무용지물 되나 [XBRL 공시의 민낯②]

입력 2025-08-13 14:18  

이 기사는 08월 13일 14:18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기대한 건 자동화였는데, 결국 사람이 손으로 뜯어보는 수준입니다.”

국내 대형 데이터 전문기관 관계자는 국제표준 전산언어(XBRL) 데이터 활용성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도입 초기만 해도 XBRL이 기업 공시 데이터를 자동으로 처리하고, 재무 분석도 정교하게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정작 지금은 데이터기관들조차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기대 컸던 XBRL, 활용은 요원
13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XBRL 기반 재무데이터 시스템이 데이터 관련 실무에서는 사실상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가 일을 대신해줄 줄 알았던 데이터 시스템이, 오히려 사람 손을 더 필요로 하는 ‘불편한 도구’로 전락하면서다.

XBRL 제도의 핵심 취지는 개별 기업 보고서를 내려받지 않고도 계정 항목을 자동으로 매핑하고, 주석 사항까지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데이터 전문기관 관계자는 “기업마다 계정과목이 너무 다양하고 양식도 제각각이라 자동 매핑이 안 된다”며 “결국 사람이 일일이 데이터를 분류하고 해석해야 하다 보니 사람이 읽는 텍스트 수준으로만 보조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XBRL 보고서 상당수가 국제 표준사양(Core Specification)을 충족하지 못하고 오류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는 점도 데이터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기관에서도 한국 XBRL 데이터를 활용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가 시스템 설계 오류와 함께 감사보고서와 XBRL 문서의 구조를 인위적으로 일치시키려 한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감사보고서는 사람이 읽는 HTML 문서이고, XBRL은 컴퓨터가 처리하는 기계 판독형 데이터다. 그런데 금감원 시스템은 XBRL 문서를 작성할 때 사람이 익숙한 감사보고서의 목차, 표 순서 등에 맞춰 구조를 일치시키도록 의무화했다.

기업 공시 담당자는 “XBRL은 본래 기계가 읽는 문서인데 사람이 보는 보고서 구조를 억지로 따르게 한 점이 의아하다”며 “구조를 일치하기 위해선 표준 항목만으로는 불가능해 항목을 새로 만드는 확장 작업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이 분류체계상 표준 항목상 표를 사용하지 않고 기업이 자체적으로 만든 확장 표의 비율은 3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확장이 과도하게 사용되면 표준화가 저하돼 자동 분석이 어려워진다”며 “같은 개념이라도 태그된 이름이 다르면 별도로 처리해야하는 등 데이터 클렌징 및 매핑 작업이 복잡해진다”고 설명했다.
XBRL의 본질 훼손한 정책 설계
금감원은 XBRL 문서를 사업보고서에 그대로 불러와 표시하도록 해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 간 공시 정보 불일치를 최소화하려고 이런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정보이용자 입장에서도 정보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고려했다면 애초에 XBRL 주석 공시를 도입할 때 인라인 XBRL(iXBRL) 방식을 도입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iXBRL은 사업보고서와 XBRL이 하나의 문서에 통합된 방식으로 미국 SEC 등이 활용하고 있다. 사용자는 사업보고서 항목에 마우스를 올리기만 해도 해당 데이터의 구조화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가 단순한 시행착오나 교육 부족 때문이 아니라, 제도 설계 단계와 기술 구현 단계에서의 구조적 실패라고 본다. XBRL은 회계와 IT가 융합된 복합 분야이지만, 한국에는 이를 동시에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 인력이 매우 드물다.

복수의 컴퓨터공학 전공 회계사들도 “국내에서 XBRL 데이터를 기재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은 적지 않다”며 “그러나 국내에서 XBRL의 상세한 구조부터 제도 설계까지 온전히 이해하는 전문가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금감원의 조직 역량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민간 기업과 기술적 제휴를 높여 시스템 및 제도 운영의 효율성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와 같이 정부가 주도권을 쥐는 구조를 가져갈 것이라면 인력과 예산이라도 대폭 강화해 경쟁력을 높여야한다는 말도 나온다.

시장 관계자는 “다른 국가들처럼 민간 기술기업의 참여를 확대해 제도 운영을 분산시키고 금감원은 관리 감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책임지는 구조라면 조직의 전문성과 자원을 끌어올리는 게 필수”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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