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간 이어온 나눔의 가치와 사회통합의 의미를 되새겨야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도시재개발로 급속히 변화하는 이 지역 한복판에 36년째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다일공동체의 ‘밥퍼’다. 매일 아침과 점심, 700여 명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온정을 나누는 이 공간을 두고 일부에서는 ‘기피시설’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씌우려 한다. 과연 그럴까?
기피의 대상이 아닌, 희망을 만드는 공간
밥퍼를 단순한 무료급식소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이 공간이 가진 진정한 가치를 놓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한 수혜자는 “배고파서 죽는 것보다 외로워서 죽겠다”며 밥퍼를 찾아왔다고 했다. 이는 밥퍼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켜주는 ‘사회적 안전망’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밥퍼를 찾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곳은 절망의 끝에서 삶의 이유를 찾게 해주는 희망의 공간이다.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온 곳에서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웃음을 통해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는 한 방문자의 고백은 밥퍼의 진정한 의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사회의 종합적 복지 모델
현대 사회가 직면한 복잡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밥퍼는 단순한 급식 제공을 넘어 정서적 지원, 사회적 관계 회복, 자립 지원 등을 아우르는 종합 복지 서비스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36년간 약 5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에서 나눔의 가치를 실천해온 것은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를 이끌어내는 사회적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보여준다. 이는 정부 주도의 복지 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각지대를 메우는 민간 영역의 소중한 역할이다.
금속처럼 견고한 사회적 기반
밥퍼가 36년간 한 번도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어온 것은 금속처럼 견고한 사회적 신뢰와 연대의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팬데믹, 도시재개발 등 수많은 변화와 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은 것은 이 공간이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를 담은 상징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여행자들까지 자원봉사에 참여하면서 ‘K-나눔의 성지’로 불리고 있다. 영국의 한 청년 봉사자는 “소외된 이웃들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밥퍼처럼 나눔과 봉사에 동참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기를 바란다”며 밥퍼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몽석처럼 변하지 않는 나눔의 철학
최일도 목사가 제시한 ‘지금부터, 여기부터,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부터’라는 실천 원칙은 몽석처럼 변하지 않는 나눔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이러한 확고한 가치관은 시대의 변화와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기둥 역할을 해왔다.
다일공동체의 나눔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아시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 11개국 22개 분원에서 밥퍼와 빵퍼, 아동결연 등 다양한 나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는 한국형 사회복지 모델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님비 현상을 넘어 핌피(PIMFY)로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NIMBY)’는 님비 현상은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 개인의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진정한 공동체는 ‘내 앞마당에 부탁한다(PIMFY, Please In My Front Yard)’는 자세에서 만들어진다.
밥퍼가 위치한 청량리 일대는 도시재개발로 급변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웃들을 끌어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시 발전이다. 성숙한 도시는 경제적 가치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포용하는 능력이야말로 선진 도시의 진정한 지표다.
밥퍼는 더 이상 단순한 무료급식소가 아니다. 이곳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며, 지속가능한 나눔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회적 가치 창출의 거점’이다.
현대 사회가 직면한 고독, 소외, 불평등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도 크다. 물질적 지원을 넘어 정서적 돌봄과 사회적 관계 회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통합적 접근은 미래 사회복지의 방향을 제시한다.
성숙한 시민사회를 향해
기피시설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밥퍼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에서 성숙한 시민사회가 시작된다. 36년간 한 번도 쉬지 않고 이어온 나눔의 역사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밥퍼와 같은 공간을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낡은 관점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는 희망의 공간으로 재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더불어 사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글-김영배 지속가능경영학회 회장, 대한민국사회공헌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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