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서울옥션에 출품된 맥켈란(Macallan) 파인앤레어 60년 숙성 위스키는 한 병이 7000만 원에 낙찰됐다. 술 한 병에 수천만 원이라는 금액은 당시 국내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그로부터 13년 뒤인 2018년 같은 제품이 영국 소더비 경매에 나왔다. 낙찰가는 159만 파운드, 한화 약 21억 원이었다. 2023년에는 라벨만 바뀐 같은 제품이 219만 파운드(약 35억 원)에 낙찰돼 세계 최고가를 기록했다. 대체 위스키는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최고가를 경신할 수 있을까. 답은 '스카치위스키' 제도의 치밀한 전략에 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스카치위스키의 기준, 즉 △곡물로 제조하고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하며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의는 20세기에 들어서야 확립됐다. 위스키의 법적 정의가 생긴 역사는 100년 남짓이란 얘기다.
1909년 영국 정부는 '위스키 및 기타 음용 증류주 정의(Whisky and Other Potable Spirits)'라는 주제로 왕립조사위원회를 꾸려 처음으로 위스키의 정의를 논의했다. 위원회는 위스키를 "맥아 효소로 당화한 곡물을 발효·증류한 술"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에 숙성 기간이나 알코올 도수에 대한 기준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정의는 법적 강제력도 없었고, 업계 내 갈등을 잠재우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당시까지 영국 주세법에는 위스키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법령상 '몰트 스피릿(malt spirit)', '그레인 스피릿(grain spirit)', '플레인 스피릿(plain spirit)' 등으로 분류됐다. 위스키는 어디까지나 시장에서 통용되는 명칭이었다. 스코틀랜드 최초로 합법 면허를 취득한 글렌리벳(Glenlivet·1823년)도 면허상 명칭은 '스피릿'이었다.
숙성 개념이 법률에 처음 반영된 건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5년이었다. 영국 정부는 금주 정책의 일환으로 '미숙성 증류주 제한법(Immature Spirits Restriction Act)'을 제정해 미숙성 증류주의 판매를 금지했다.
이 법으로 위스키는 최소 2년 숙성이 의무화됐다. 이후 1916년에는 3년으로 강화됐다. 본래는 위스키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규제였지만, 이를 계기로 1933년 영국 정부가 주세법을 개정했다. 이때 '스카치위스키(Scotch Whisky)'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법적 지위를 얻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고 오크통에서 3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으며 위스키는 비로소 법적 주종으로 자리 잡았다.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이라는 기준은 더 늦게 확립됐다. 1917년 병입 위스키의 도수를 최저 28.6도, 최고 40도로 제한했다. 하지만 세금 문제로 시장에서 40도 미만 제품이 유통되기도 했다.
결국 1988년 제정된 '스카치 위스키 법(Scotch Whisky Act)'에 이르러서야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 40도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을 적용받았다. 2009년에는 유럽연합(EU) 단일 규정인 '스카치위스키 규정 2009(Scotch Whisky Regulations 2009)'가 제정돼 원료, 숙성, 도수, 생산지 등 위스키의 정의가 더욱 구체화했다.
특히 다른 증류소의 원액을 섞지 않고, 한 증류소에서 맥아 하나로만 만드는 싱글 몰트 위스키는 이러한 엄격한 기준 아래 부가가치를 높이며 시장을 주도했다.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것 또한 물로 희석하는 비율을 줄여 원액의 비중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숙성 역시 단순히 시간을 두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과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기준을 높이는 전략은 희소성과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전략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기준을 강화하자 위스키 팬들의 로열티는 높아졌다. 위스키는 단순히 마시는 술에서 소장하는 문화로 확장됐다. 셰리(Sherry) 와인, 보르도(Bordeaux) 와인, 부르고뉴(Bourgogne) 와인, 포트(Port) 와인, 마데이라(Madeira) 와인 등을 담았던 다양한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방식이 유행했다. 위스키의 맛과 향을 즐기는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알코올 도수도 40도를 넘어 50도, 60도가 넘는 제품까지 등장해 도수별로 즐기는 방식이 나왔다. 원재료의 가공방식에 따른 감상 포인트도 확대됐다.
맛과 향을 즐기는 걸 넘어 감상까지 하다 보니 과음과 폭음 문화도 잦아들었다. 다양화를 통해 단순히 소비하는 걸 넘어 꾸준히 소장하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먹고, 마시고, 버리는 대상에서 여러 가지를 마셔보는 취미, 하나하나 모아가는 소장품과 자산으로 인식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최근에는 1병에 1만 원 이하에 불과한 초저가 위스키도 등장했다. 위스키의 다양성이 확장하면서 소비자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스카치위스키와 프랑스 와인이 보여주듯 술은 그 나라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한국 콘텐츠는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BTS와 블랙핑크의 신드롬,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 술의 이미지는 여전히 드라마 속 폭음, 과음, 슬픔으로 점철돼 있다. 이제는 제도의 고도화와 세분화, 숙성 기준의 확립을 통해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위스키가 훌륭한 술이 되는 데엔 훌륭한 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세계가 문화강국임을 인정하는 우리나라 역시 품격에 맞게 우리 술에 걸맞은 제도를 갖출 때가 됐다. 역사는 늘 그렇게 시작됐기 때문이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 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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