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코인 발행 위해 단기 국고채 도입 필요"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단기 국고채 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과 유동성을 뒷받침하려면 만기 1년 이하 단기 국채를 준비자산으로 활용해야 하는데, 한국 국채 시장에서는 단기물 발행 및 거래 인프라가 마련돼 있지 않아서다. 국가재정법상 국채 발행 때 ‘발행액’ 기준으로 국회 승인을 의무화해 단기물 도입의 제도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단기채 시장 활발”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스테이블코인과 단기 국고채’ 세미나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도입되면 지급 안정성과 가치 저장 기능을 제고하기 위해 준비자산이 필요하다”며 “정부의 일시적인 자금 부족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 단기 국고채가 이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단기 국고채는 만기가 1년 이하인 국채를 말한다. 미국에서는 4주부터 52주까지 단기물 거래가 가능하다. 지난달 미국 의회를 통과한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법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발행액 전액에 상응하는 준비자산을 현금 또는 만기 93일 이내 미국 단기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보유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의 대규모 환매나 결제 수요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하게 현금화해 대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반면 한국 국채 시장은 2년 만기부터 50년 만기까지 중·장기물이 중심이다. 정부는 금리 관리와 재정 조달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물 위주로 발행했다. 단기물은 발행과 상환 절차가 자주 있다 보니 관리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더구나 미국 국채 투자자는 은행, 머니마켓펀드(MMF), 보험사, 연기금뿐 아니라 해외 중앙은행, 기업 등 다양하지만 한국은 주로 은행과 보험사, 연기금이 장기물 위주로 투자하고 있다.

◇“법적 제약도 존재”

한국의 단기채 시장 조성을 가로막는 국가재정법상 걸림돌도 존재한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할 때 총발행액 기준으로 국회 승인을 받게 돼 있다. 총발행액에는 신규 발행뿐 아니라 만기가 도래했을 때 채권을 갚기 위해 새로 발행하는 차환액도 포함된다. 예컨대 3개월 만기 국채를 10조원어치 발행해 1년 동안 네 차례 차환하면 실제 잔액은 10조원이지만 총발행액은 40조원으로 집계된다. 같은 규모를 3년 만기로 발행하면 총발행액은 10조원에 그친다. 단기물일수록 차환이 잦아 발행액이 폭증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단기 국고채를 도입하면 실제 빚이 늘지 않아도 ‘발행액이 많이 증가했다’는 정치적 부담이 생길 수 있다.

김 연구위원은 “단기 국고채는 금리의 급격한 변동이나 시장 수요 변동 상황에서도 위험이 낮은 데다 장기 국채보다 상대적으로 이자율이 낮아 재정 자금 조달 및 운용 효율화에도 기여한다”며 “부채 관리 기준을 발행액이 아니라 순증액이나 잔액 기준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단기물 발행 확대는 부채 관리의 투명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이유로 통화안정증권 등 기존 무위험 채권이 준비자산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다만 발행 규모와 접근성에 한계가 있어 스테이블코인이 대규모로 발행되면 안정적 수요를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단기 국고채는 준비자산을 위한 해결책으로 거론되는 여러 대안 중 하나”라며 “준비자산을 어떻게 구성할지를 포함해서 금융위원회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미현/남정민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