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하나만으로 풍경을 상상해보게 만드는 지역이 있다. 이를테면 남프랑스가 그렇다.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아마 그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에서 느껴지던 낭만적인 분위기 덕분일 것이다.
일론 머스크나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조지 클루니 등 셀럽들이 이곳에 별장이나 와이너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곳은 삶을 즐기는 ‘로망’을 실현하기에 좋은 도시라는 의미니까.
마르세유 프로방스 공항에 내려 알프 드 오트 프로방스로 향하는 길에 펼쳐진 전경은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펼쳐지던 보랏빛 라벤더밭까지도.

오트 드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부의 알프스 남쪽 지역이다. 해발 고도가 높아 여름에도 서늘하고, 건조하지만 햇볕은 강렬하다. 다른 곳보다 라벤더가 선명한 보라색을 띠는 이유다. 6월 말 즈음부터 2~3주일 정도만 이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이 라벤더밭을 더욱 근사하게 만드는 것은 오랜 건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이다. 중세에 세워진 건물들은 숲과 나무와 어울려 한 편의 그림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라 본 에타프는 이 정취를 온전히 느끼기에 더없이 훌륭한 호텔이다. 18세기 마차 여관을 개조해 만든 이곳은 ‘를레&샤토(Relais & Chateaux)’의 일원이다. 를레&샤토는 일종의 호텔 연합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친 호텔에만 자격이 주어진다.
럭셔리하면서도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한 독창적인 건축, 음식,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대부분 호텔이 고성(古城) 등의 역사적 건축물 안에 들어서 있는 이유다. 개인화된 서비스는 물론이고 지속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선정 기준이 미쉐린 가이드만큼 까다롭다. 그러니 믿고 묵어도 좋다는 보증 수표와도 같다.


라 본 에타프의 핵심은 미쉐린 1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다. 이곳을 이끄는 이는 자니 글레이즈 셰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요청으로 세계 정상 만찬을 담당하기도 했던 그는 아버지에 이어 레스토랑을 책임지고 있다. 전형적인 미쉐린 레스토랑과 달리 격식보다는 따뜻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지향하는 것이 특징.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메뉴는 어렵지 않고 소박하다. 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는 벽돌을 그릇으로 활용한 디스플레이마저도.

좀 더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쿠킹 클래스에 참가하면 된다. 셰프와 함께 직접 허브를 수확하는 농장 견학부터 시작한다. 호텔 뒤편에 딸린 정원은 그야말로 셰프의 보물창고와도 다름없다. 세이지, 차이브, 홀스래디시, 구즈베리, 카시스, 이름 모를 허브들… 자니 셰프는 정성껏 가꾼 각종 채소와 허브를 하나씩 소개한다. 매일 하루에 필요한 만큼 수확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일과다. 열매를 따서 옷에 쓱쓱 문지르고 입에 넣는다.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아 가능한 일이다. 구스베리에서 신선한 풀 내음이 가득한 신맛이 입 안에 퍼진다.

이렇게 수확한 채소를 한아름 안고 주방에 선다.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 서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다. 프로방스의 전통 음식 파르시(Farci)에 도전해 본다. 파프리카, 호박, 가지의 속을 파고 재료를 채워 넣어 오븐에 구우면 된다.
“프로방스 사람들은 저마다의 파르시 레시피를 가지고 있지요.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넣으면 됩니다.” 셰프를 따라 엉겅퀴 밀, 차이브에 송이가 자잘한 들꽃을 채워 넣는다. 마지막으로 올리브 오일을 아낌없이 뿌린다. 자니 셰프는 올리브 오일이야말로 프로방스의 맛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와인의 ‘테루아’처럼, 올리브 역시 토양에 따라 고유의 맛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올리브 오일은 풀 향이 강하고, 아티초크와 같은 맛을 내는 게 특징이죠.”
조리 과정에서 예상할 수 있듯, 파르시는 화려한 맛은 아니다. 그러나 프로방스의 햇빛과 바람의 맛이 거기에 있다. 소박하지만 충분히 풍성한 맛이다.

남프랑스에서 무엇을 사오면 좋을까?라벤더 꿀
프로방스에서 드넓게 펼쳐진 라벤더밭의 감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면 알맞은 기념품. 라벤더가 만개할 때 채취하는 꿀로, 라벤더 꽃 향이 그대로 느껴진다. 특정 브랜드가 유명하기보다는 농민들이 직접 수확해 소규모로 생산하는 제품이 많다. 치즈나 바게트에 곁들이면 간단히 프로방스식 식탁이 완성된다.

로제 와인
프랑스를 여행할 때 와인을 빼놓을 수는 없다. 프로방스 지역의 대표적인 와인은 로제 와인으로, 장미와 신선한 과일의 아로마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준다. 샤토 라 코스트의 스파클링 로제 와인 ‘라 뷜(La Bulle)’은 뽀글뽀글 올라오는 기포가 남프랑스의 뜨거운 더위를 식혀준다. 이곳 사람들은 여름에 로제 와인에 얼음을 하나 넣어 더욱 차갑게 즐긴다.

깔리송
엑상프로방스 지역에서 15세기부터 만들어온 전통 과자. 아몬드 가루와 레몬, 오렌지 껍질을 넣어 반죽하고 위에 아이싱을 올려 만든다. 쫀득한 식감으로 시트러스의 상큼함과 달콤함이 어우러진 맛으로, 진한 에스프레소와 함께하면 찰떡궁합.

록시땅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은 뷰티 브랜드 록시땅의 본사가 바로 프로방스에 있다는 사실. 현지의 아몬드, 라벤더, 버베나 등 식물에서 유래한 제품을 활용한 제품을 만날 수 있다. 본사에서는 여행객을 위한 연구실과 공장을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투어 끝에는 록시땅 숍도 방문할 수 있는데, 이곳에서만 판매하는 리미티드 에디 션을 만날 수 있다. 본사 한정 특별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

프로방스 시장
뭔가 ‘현지 감성’이 듬뿍 들어간 선물을 사고 싶다면 길에서 열리는 시장으로 향해보자. 생산자들이 직접 재배한 과일과 채소, 육가공품, 꽃까지 다양한 물건을 만날 수 있다. 일요일 아침에는 빈티지 마켓에서 희귀한 고서와 LP, 직접 만든 예술 작품도 구입할 수 있다.
김은아 한경매거진 기자 una.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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