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A씨는 최근 은행에서 유언대용신탁 상품에 가입했다. 갈수록 건강이 나빠져 치매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사후 자녀들에게 보유 주식과 부동산을 큰 분쟁 없이 상속하기 위해서다. 은행 측은 A씨 사망 전까지 신탁 자금을 운용해 생활비를 지급한 뒤 사후에 계획대로 재산 승계를 진행할 방침이다.유언대용신탁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 계약을 맺어 금융회사 등에 자산관리를 맡기고, 계약자가 사망하면 계약 내용에 따라 재산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상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화 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인기 비결로 꼽힌다. 시중은행도 1인 가구 등 빠르게 변화하는 인구구조에 맞춰 다양한 유언대용신탁 상품을 내놓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의 가장 큰 장점은 간편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기존 유언 방식인 공정증서는 유언자와 증인 두 명이 참석해 공증인이 제대로 유언을 받아 적었는지 승인하고 서명해야 한다. 반면 신탁 상품은 피상속인과 은행이 계약하면 되기 때문에 비교적 편리하다. 유언장 분실이나 보관 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해외 거주 상속인의 처분과 자녀 간 상속 분쟁 예방에도 효과적이다.위탁자의 뜻대로 재산 분배 방식을 설계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자녀에 따라 구체적인 항목으로 나눠 유산을 남기는 것도 가능하다. 미성년 자녀가 있다면 성년이 된 이후에 재산을 물려주는 방식도 설정할 수 있다. 자녀가 없거나 1인 가구라면 남은 재산을 병원, 대학 등 기부단체에 전달하는 내용으로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시장 전망도 긍정적이다. 유언대용신탁의 주요 타깃인 치매 환자의 자산이 150조원을 넘어서는 등 ‘치매 머니’(치매 환자의 보유 자산) 규모가 빠르게 커지고 있어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치매 머니는 2023년 150조원을 돌파했다. 2050년에는 지금보다 세 배 이상 많은 488조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하나은행은 유언대용신탁 시장의 강자로 꼽힌다. 2010년 금융권 최초로 유언대용신탁 사업을 시작하는 등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장애인신탁, 후견신탁, 49재신탁, 기부신탁 등 유언대용신탁 관련 상품 포트폴리오도 다양하다. 지난해 그룹 차원에서 은행, 증권, 보험 등 전 계열사의 역량을 결합한 시니어 특화 브랜드 ‘하나더넥스트’도 내놨다.
국민은행은 유언대용신탁 가입 문턱을 낮추는 방식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달 위탁재산이 1000만원만 돼도 가입이 가능한 ‘간편형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했다. 이전까지 이 은행에선 위탁재산이 10억원 이상이어야 유언대용신탁에 가입할 수 있었다. 기존 유언대용신탁이 고액 자산가를 중심으로 운영된 것과 달리 최저 가입 금액을 대폭 낮춰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게 특징이다. 신탁이 고액 자산가의 전유물에서 중산층 고령자의 재산 설계 수단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우리은행은 이달 말 최소 위탁재산이 1000만원인 ‘우리내리사랑 안심신탁’을 내놓을 예정이다. 농협은행은 지난 5월 ‘NH 사랑THE 종합유언대용신탁’을 리뉴얼해 최소 가입 금액을 기존 3억원에서 금전 외 재산 합산 1억원, 금전 기준 5000만원으로 내렸다. 신한은행은 2022년 8월 아예 금액 기준을 없앴다.
은행권에 이어 증권사들도 유언대용신탁 시장 후속 주자로 뛰어들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달 유언대용신탁 브랜드 ‘삼성증권 헤리티지’를 출시했다. 종전에는 하나증권, 신영증권 등 일부 증권사만 관련 사업을 벌였다. 프라이빗뱅커(PB)와 신탁담당자, 세무·법률 전문가가 함께하는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삼성증권 측은 삼성증권 헤리티지를 통해 다양한 시니어 금융 관련 서비스와 상품을 추가로 선보인다는 방침이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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