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일터의 폭력과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190호 ‘폭력 및 괴롭힘 방지협약’ 비준을 추진한다.
12일 정부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2025년 하반기부터 190호 협약 조문별 영향 분석에 착수한다. 지난 2019년 6월 열린 제108차 ILO 총회에서 채택된 ILO 190호 협약은 근로자의 계약 형태와 관계없이 일터에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해 신체적·심리적·성적·경제적 해를 끼치는 행위와 관행을 금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근로기준법 제76조의2) 규정 보다 범위를 넓혀 직장 밖 제3자에 의한 폭력(예: 고객 갑질), 플랫폼 노동 종사자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비정형 근로자 보호까지 포함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의 현행 직장내 괴롭힘 금지 규정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만 적용된다.
정부는 협약을 비준한 프랑스·독일·덴마크 등에 대한 사례 조사와 함께 폭력·괴롭힘 판단기준, 조직문화 개선 사례, 젠더 감수성을 고려한 입법례 등에 대해 연구용역을 실시하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2026년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분과위원회를 통해 노사·전문가 사회적 대화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최종적으로 2027년 상반기 법령 개정과 비준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비준 시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성폭력방지법, 산업안전보건법, 형법, 민법 등 다수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해외 투자자와 글로벌 기업의 ESG 평가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폭력과 괴롭힘 예방 의무, 위험성 평가, 교육·훈련 등 사용자의 책무가 법적으로 강화돼 기업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협약의 폭넓은 적용 범위와 강력한 사용자 의무는 노동 시장 유연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영주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위원은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사건에서 볼 수 있듯 다양한 유형의 괴롭힘이 현행 근로기준법 바깥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며 "더욱 적극적인 입법을 통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부는 또 2026년까지 ‘일자리 평가지표’를 개발해 2027년 중 기획재정부·조달청·행정안전부 등의 공공조달 심사 기준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행복한 일터 인증제’도 가동한다. 현재 운영 중인 ‘일자리 으뜸기업’, ‘일·생활균형 우수기업’, ‘청년일자리 강소기업’ 등을 통합 인증제로 전환한다. 정부 관계자는 "관계부처 협의, 이해관계자 의견수렴 등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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