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장관(이지용), 외교부 장관(박제순), 국방부 장관(이근택), 교육부 장관(이완용), 산업부 장관(권중현). ‘을사오적’으로 퉁 치지 말고 광복절을 맞아 각자의 이름으로 선명하게 기억해야 할,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다. 8인이 모인 ‘국무회의’에서 5명이 찬성표를 던지자 일본은 다수결이라며 외교권을 박탈했다. 그렇게 암흑이 시작됐는데 그들은 암흑의 하늘을 우러러보기나 했는지 몰라도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잘 먹고 잘 살았고, 친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 외에도 그들의 공통점이 숱하지만 유별난 게 ‘전원이 법관’이었다는 대목이다.1895년에 ‘재판소구성법’이 통과되며 이 땅에도 법원이란 게 생겼고 4년 뒤에 고등재판소(대법원)가 ‘평리원’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사법제도의 근대적 외형을 갖췄다는 점에서 괜찮게 볼 일이지만 왕이 판검사를 마음대로 임명한다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왕의 총명에 따라 법원의 수준이 현격하게 출렁일 수 있는데 하필이면 그 왕이 고종이라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을 자들을 골고루도 뽑아 앉히는 무능을 시현했다. 이지용(평리원 재판장), 박제순(평리원 재판장 서리), 이근택(평리원 재판장), 이완용(전북 재판소 판사), 권중현(평리원 재판장 서리).
진짜 우울한 대목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며 인권을 주창한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의 재판이다. 그에게 사형을 판결한 평리원 판사 명단에 ‘조병갑’이 들어 있다. 맞다. 민영준을 통해 ‘왕비 민씨’에게 7만 냥을 바쳐 고부의 군수가 된, 자기 모친상 때 부조금 2000냥을 모아주지 않은 농민 전창혁을 죽을 때까지 곤장을 때린, 그러고도 기상천외하고 악랄한 수탈로 전창혁의 아들 전봉준이 결국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키게 만든, 그 조병갑이다. 고종은 그렇게 파직된 탐관오리를 다시 판사로 임명하고 선각자 최시형을 죽이게 만들었다. 그걸 보면 자기가 임명한 법관 출신들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난 것도 자업자득이다.
찬찬히 생각하면 ‘그런 법관’을 선택한 바 있는 우리가 고종을 비판할 ‘처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며 주어진 독배를 시원하게 ‘원샷’하셨다는 거짓말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과서에서’ 가르쳐온,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의 책을 잘못 번역한 걸 알면서도 헌법재판소가 제발 ‘교과서 좀 바꾸라’고 판결하는 2004년까지 꿋꿋하게도 가르쳐온 교육 관료들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법치’라는 개념이 국민들이 법을 준수한다는 게 아니라 통치자의 권한이 법에 의해 제한된다는 의미라는 사실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던 것도 그러하다.
얼마 전 일부 법관들이 삼권분립 보장을 운운하시는 걸 보고 우울증이 도졌다. ‘사법부의 삼권분립’은 누가 해주는 게 아니다. 그들은 대통령이나 국회처럼 정기적으로 국민의 선거로 평가받는 ‘민주적 정통성’이 없다. 시험 한 번으로 ‘늘공’이 되고 나면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평가하고 승진하니 임명권자는 국민이 아니라 자신들의 실력이라 착각하기 쉽다. 게다가 특정 학교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으니 그가 말한 ‘카르텔’이 되기에 차고도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 공부를 열심히 하면 현명해지고 아울러 덕성까지 갖출 거라는 위태롭지만 ‘간절한’ 믿음으로 국민이 힘을 위탁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덕성 제로였던 그 평리원 법관’들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외우며 개인의 윤리성 함양이 학문의 출발이라는 성리학을 죽도록 공부한 자들이다.
삼권분립에 필요한 정당성? 그건 법관 전원이 매일매일의 금도를 지킴으로써 겨우 확보되는 것이다. 그렇게 지켜가는 것인데 그간의 행동을 보면 만만치 않다. 멕시코가 법관을 직접선거로 뽑는다니까 사법부까지 포퓰리즘에 물들게 된다고 비판을 하시는데 ‘오죽했으면’ 멕시코 국민이 그런 선택까지 했을까 싶다. 혹자는 평리원 검사 출신인 헤이그의 이준 열사도 계신다며 변명하는데 고관의 비리를 탄핵했다고 임명 한 달 만에 그를 자른 게 그 ‘왕’과 ‘평리원’이었다. 평가받지 않는 권력은 잠시 방심해도 교만과 독선이 들러붙기 마련이다. 사법부의 삼권분립? 그건 주어지는 게 아니고 경계하고 또 경계해서 ‘스스로 지켜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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