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디에이치반포라클라스 전용면적 50㎡ 소유자는 기존 전세 계약(보증금 9억원)을 갱신해 보증금 9억원에 월세 60만원을 받는 반전세로 전환했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DMC파크뷰자이 2단지 전용 59㎡ 세입자는 5억5000만원에 매달 30만원을 추가로 내는 임대차 계약을 했다. 반포동 A공인 관계자는 “보유세는 오르는데 은행 예금금리가 떨어지고 있어 월세를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 공급 부족과 전셋값 상승,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영향으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내는 반전세 형태 월세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에서 전세에서 반전세 등 월세로 바꾼 갱신 계약은 377건으로 집계됐다. 저소득·청년·고령층 등 소득이 적은 계층의 주거 불안이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5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7월 서울에서 전·월세 계약을 하고 확정일자를 받은 주택(53만6416가구) 중 월세는 64.1%인 34만3622가구에 달했다. 2014년 통계 집계 후 최고치다. 처음 60%를 넘은 작년(60.3%)보다 3.8%포인트 올랐다. 2014년 39.2%이던 서울 월세 비중은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이 적용되고, 전세사기가 불거진 2021년부터 확대되기 시작했다.
아파트도 월세화가 확산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은 43.9%였다. 작년 상반기(42.9%)는 물론 5년 평균(39.8%)을 웃돈다. 전세금 부담이 커지자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내는 세입자가 늘어난 것이다. 전세사기 여파에 수억원에 달하는 대출금을 전세보증금으로 내기 불안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5억6333만원으로, 1년 새 6833만원 올랐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주택 공급 부족과 전셋값 상승이 아파트 월세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월세를 선호하는 집주인은 늘고 있다. 은행 예금금리가 연 2.5%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비율)은 4.7% 수준까지 올랐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 1억원을 받아 은행에 넣어두면 월 이자가 21만원이지만, 월세로 바꾸면 월 39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3467건으로 작년 말보다 25.4% 줄어든 데 비해 월세는 1만9249건으로 같은 기간 2.6% 감소하는 데 그쳤다. 집주인 입장에선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 대출 금지와 주택담보대출 때 실거주 의무 등으로 갭 투자(전세 낀 매매)가 힘들어져 전세 매물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세가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출에 너무 의존해 변질된 측면도 있다”며 “월세가 어느 정도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민층에게 매달 적지 않게 들어가는 월세는 큰 부담이다. 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 월세(한국부동산원 기준)는 119만원으로 조사됐다. 월세 거주자가 증가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존 제도는 전세 세입자를 지원하는 데 맞춰져 있다”며 “월세 세액공제의 소득 기준을 높이고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월세 바우처를 제공하는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근호/이인혁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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