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최근 필자는 다소 난처한 경험을 했다. 한 의뢰인이 중요한 의사 결정을 앞두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둔 채 선택지별 장단점을 분석한 뒤 법령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자문 변호사와 긴밀하게 의견을 나눴다. 그런데 의뢰인의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해 해당 변호사가 자문한 의견서, 대화 내역, 회의록 등이 전부 수사 기관으로 넘어갔다. 의뢰인이 처음부터 규제를 회피할 의도로 변호사에게 자문했다는 논리로 해당 기록이 의뢰인에게 불리한 증거로 작용하는 억울한 상황이 된 것이다.
사법 연수생 시절 필수 과목이었던 '법조윤리' 시간에 단골 토론 메뉴로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가 변호사의 비밀 유지 의무와 진실 의무가 충돌할 경우였다. 의뢰인을 상담하고 조력하는 과정에서 어떤 진실을 알게 됐을 때 이를 지켜줘야 하는지, 아니면 수사 기관이나 법원에 사실대로 밝혀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이는 가톨릭 신부가 고해성사에서 알게 된 진실을 은폐했을 때 성직자라는 이유로 면책되는지, 증거 인멸 등으로 처벌받아야 하는지에 관한 논란과도 일맥상통한다.
실무를 하다 보면 변호사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지 않는 의뢰인들을 종종 만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와 사실관계를 최대한 많이 알려야만 변호사도 최선의 조언을 제공하고, 방어 전략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처럼 의뢰인이 변호사와 가감 없이 모든 사실을 공유하기 위해선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 공유된 정보가 철저히 둘 사이의 비밀로 유지된다는 확신이 필요할 것이다. 변호사법 제26조와 변호사윤리장전 제18조가 '변호사가 업무상 알게 된 비밀에 관한 비밀 유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이유다. 더 나아가 형사소송법 제149조는 변호사가 업무상 관계로 알게 된 타인의 비밀에 관해선 증언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해 증언의 의무보다 비밀 유지 의무를 더욱 중요하게 보호하고 있다.

만일 변호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제삼자로부터 의뢰인의 비밀을 침해당할 상황에 부닥쳤을 때 변호사가 이로부터 자신의 업무상 비밀이자 의뢰인의 비밀을 지킬 권리는 인정될 수 있을까? 앞서 말한 사안으로 돌아가, 수사기관이 의뢰인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입수한 변호사의 자문 내역 등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의 업무상 비밀은 과연 형사재판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을까.
형사 사건에서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모든 정보를 제공해 충분한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방어권 보장의 핵심이자 헌법상 권리다. 거미줄 같은 각종 규제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현행 법령 내 최선의 경영 판단을 위해 여러 잠정적 경우의 수를 가정해 법률 자문을 받는 것은 준법 경영을 위한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법률 선진국에선 변호사의 행위가 별도 범죄에 해당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의뢰인과 변호사 사이에 오간 법률 의견서, 대화 내용, 녹취록 등 자료는 해당 의뢰인에 대한 형사재판의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미국에선 연방 증거 규칙과 통일 증거법 등에서 '변호사 비밀유지권(ACP·Attorney-Client Privilege)'로 이를 명문화하고 있으며, 영국에선 '변호사특권(Legal Professional Privilege)이라고 불린다. 그 외 독일, 프랑스 등도 이와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다. 재판 단계뿐 아니라 수사 단계에서도 미국 법무부는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시의 유의 사항과 절차에 대해 매뉴얼을 정하고 있다. 이 원칙은 변호사와 주고받은 비밀자료가 보관된 의뢰인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서도 준용된다.
아쉽게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만 아직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현행 법령에 따라 변호사의 비밀 유지 의무 이외에 비밀 유지 특권까지 인정할 순 없다는 입장인 만큼 제도가 도입되려면 별도의 입법이 필요하다.

한국도 제도 도입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변호사의 증거 인멸 행위 등 여러 부작용을 우려해 관련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려는 '조화로운' 입법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대부분 국가는 변호사의 증거 인멸, 범인 은닉 등 혐의가 있을 경우엔 ACP의 예외를 두고 있다. 미국 법무부 매뉴얼과 캘리포니아주 형법 등은 수사 기관이 아닌 객관적인 별도 기구를 통해 자료를 검증한 후 공개하도록 결정한 자료만을 수사 기관이 입수할 수 있도록 해 수사의 필요성과 비밀 유지의 필요성을 조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변호사의 비밀 유지 특권은 변호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법률 서비스의 잠재적 의뢰인인 국민들이 필수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권리다. 누구라도 법률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이때 본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변호사의 조력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의뢰인 입장에선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각 선택지의 장단점과 요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최선의 선택을 위해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야만 한다.
상담 내역이 언제라도 의뢰인과 변호사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외부에 공개돼 방어에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변호사와 솔직하게 터놓고 상의하긴 어려울 것이다. 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 유지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지한 선진국들이 ACP 등을 통해 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이유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한국도 속히 ACP 제도가 도입돼 의뢰인과 변호사가 모든 선택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자유롭게 논의하며 방어권을 보장받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