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음악가가 젊을 때 반짝이는 것은 쉽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존경받고 빛나려면 무던한 노력이 필요하다. 단순한 기교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성숙이 점점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과 실력이 오래 지속되려면, 이를 지탱할 철학과 성실한 삶의 태도가 있어야 한다. 안드라스 쉬프, 마르타 아르헤리치 같은 거장들이 수십 년 동안 여전히 존경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 양성원(57)도 마찬가지다. 수영과 러닝으로 다져진 탄탄한 체력, 사람과 화합하는 성격, 음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깊은 철학이 그의 음악 인생을 단단히 붙잡고 있다. 올해 첼로 인생 50년을 맞은 그와 최근 서울 마포구의 연세대 음대 교수실에서 만났다.
“음악은 단순한 예술을 넘어 사회적 소통과 화합의 도구여야 합니다.”
8월 초 폐막한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으로서 일을 마친 그는 국내외, 세대 간의 균형과 교류를 강조했다. 흥행보다 중요한 건 음악적 가치와 희망, 위로의 메시지다. 올여름 그는 이탈리아, 일본, 프랑스, 캐나다를 오갔다. 평창대관령음악제를 마치고는 독일로 떠난다. 동시에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 어떤 음악가보다 촘촘한 일정을 소화하는 그는 사회적 의미가 있는 공연에 마음을 준다.

마포 M클래식과 10년 인연
마포 'M클래식 축제'와의 인연도 이런 철학에 기반한다. M클래식은 올해 10회를 맞은 마포문화재단의 클래식 축제로 오는 22일부터 12월 6일까지 22회 공연이 열린다. 양성원은 9월 26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맥에서 열리는 '실내악 시리즈-바흐 스페셜' 무대에 선다. 10회 중 여섯 번째 참여로 이만하면 '가족'이라 부를 만하다.
그는 “축제를 통해 시민들의 삶이 나아지고, 사회가 아름다워지는데 기여하고 싶다”며 "일회성이 아닌 매년 축제를 믿고 찾는 분들이 늘어나서 기쁘다"고 했다. 3만원 이하의 티켓가로 국내 최정상 음악가를 만날 수 있는 이 축제는 마포를 넘어 서울 전역에서 기다리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팬데믹 기간 M클래식은 영상으로 축제를 대신했다. 2021년 양성원은 아트홀맥 리모델링 공사장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를 연주했다. 2020년 마포의 광흥당에서는 바흐의 무반주 조곡을 연주했다. 광흥당은 조선시대 선원들이 안전한 귀향을 빌었던 사당. 모두 팬데믹으로 고통받던 시기에 그는 음악가로 할 수 있는 위로를 건넸다.
“그때 많은 희생자가 있었지만, 공연장을 벗어나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어요. 아이들과 아내와 함께한 시간도 귀했고, 책도 읽고 지휘 공부도 했죠.”
그에게 공사장과 먼지는 불편이 아니라 영감의 원천이었다. “공사장에 먼지가 없으면 오히려 이상하죠. 자연스러운게 아름답습니다.” 그는 시공간에 맞춰 작곡가를 골랐다. 겨울, 먼지, 공사장의 조합은 라흐마니노프가 제격이었다.

낭만의 뿌리, 바흐
올해 마포 M클래식 축제의 주제는 낭만주의. 하지만 그는 바로크 시대의 요한 세바스찬 바흐를 택했다. 왜일까. 그에게 낭만은 바흐이고, 바흐가 낭만이기 때문이다. “낭만주의 시대의 모든 작곡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바흐입니다. 바로크가 낭만주의의 뿌리죠.”
양성원은 바흐를 “낭만주의의 기반을 마련한 음악가”로 본다. 그는 “바흐만큼 낭만적이면서 우리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곡가가 없습니다. 코드 하나, 프레이징 하나하나에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바탕이 담겨 있다”며 “바흐의 화성을 멜로디로 풀면 낭만주의 음악이 되고, 낭만파 작곡가들은 그 구조와 표현을 우러러보며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공연에서 바흐의 비올라 다 감바와 피아노 소나타 세 곡과 첼로 무반주 모음곡 2번과 3번을 연주한다. 오랜 동료이자 앨범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엔리코 파체가 함께한다.
비올라 다 감바와 피아노 소나타는 국내 초연이다. 이 곡들은 원래 첼로가 아닌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를 위한 곡.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오래된 악기로, 첼로가 등장한 뒤에 빛을 잃었다.
바흐의 무반주 무음곡에 대해서는 “낭만주의 곡들이 주로 타인이나 자연을 향한 감정을 담았다면, 무반주 모음곡은 내면을 향한 낭만이 담겼다”며 “마치 혼자 명상하는 듯한 곡으로 나의 내면을 향한 낭만과 잘 맞는 선곡”이라고 말했다.
바흐의 음악은 지성과 감성의 완벽한 균형을 갖췄다. 수학적 구조 속에서 낭만적인 코드가 피어난다. 그래서 영감이 막힌 작곡가들은 바흐로 돌아간다. 비틀즈도 바흐를 사랑했고 현대 음악가들도 바흐에서 힌트를 얻는다. 낭만주의를 말할 때 바흐를 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바흐를 “프레임과 내용이 모두 완벽한 사진”에 비유했다.
양성원은 이 공연에서 첼로라는 악기와 피아노의 대화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바흐가 상상했던 첼로와 피아노의 대화를 들으시면 됩니다. 무반주 곡은 혼자 명상이나 기도하는 분위기죠. 악기의 소리를 언어라고 생각하면, 두 악기가 나누는 대화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덧붙였다. “바흐를 들으며 각자 평화를 느끼고, 그 평화 속에서 낭만을 발견하신다면 그보다 좋은 건 없습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