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3일 오후 3시 경기 이천패션물류단지의 ‘한섬 스마트허브 e비즈’. 연휴를 앞두고 물류 작업이 한창인 시간대인데도 2층 상품 분류 구역엔 직원이 단 두 명뿐이었다. 자율이동로봇(AGV)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옷이 걸린 행거를 옮겼다. 밑층 포장대에서도 사람이 아닌 로봇만 일하고 있었다.
약 20조원에 달하는 국내 온라인 패션 시장을 잡기 위해 업체들이 물류 자동화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의류는 디자인, 색상에 따라 상품 가짓수(SKU)가 많아 물류 효율화가 까다로운 분야로 꼽힌다. 하지만 신선식품뿐 아니라 패션 시장에서도 새벽·익일배송이 ‘뉴노멀’이 되면서 주문 즉시 재고를 찾고, 검수·배송하는 물류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자동화율 90%에 달하는 한섬 스마트허브 e비즈는 온라인 물류 경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7일 한섬에 따르면 올 상반기 온라인 의류 거래액은 2000억원을 넘어섰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처음으로 연간 40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최근 패션업황 악화 속에서도 온라인 부문이 꾸준히 성장한 건 ‘빠른 배송’ 덕분이다. 한섬은 2022년 물류센터 자동화를 위해 당시 연간 영업이익의 절반(약 500억원)을 투자해 스마트허브 e비즈를 만들었다. 2년간 안정화 과정을 거쳐 연간 최대 1100만 건을 당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이 센터에선 온라인 주문이 접수되면 자율이동로봇이 행거에 부착된 전자태그(RFID)를 바탕으로 옷을 찾고, 행거를 직원에게 가져다준다. 직원이 바코드를 찍으면 인공지능(AI) 시스템이 주문한 디자인과 색상이 맞는지 확인한다.

주문한 제품이 맞으면 천장 레일을 통해 밑층 포장대로 이동하고, 직원이 옷을 택배상자에 넣으면 로봇이 포장까지 해준다. 자율이동로봇을 충전하거나, 포장대에 일이 몰릴 경우 레일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모두 자동화 돼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바코드를 찍고, 제품을 상자에 넣는 정도다.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 후 평균 배송 속도가 2.7일에서 1.7일로 빨라졌다. 고효관 한섬 스마트허브 e비즈 센터장은 “기존 물류센터보다 하루 처리능력(CAPA)이 3배 이상 늘었고, 오배송 등 ‘휴먼 에러’도 80% 넘게 줄었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의류 판매 시장이 급성장하자, 물류 전문업체에 외주를 맡겼던 온라인 업체들도 시스템을 내재화하는 추세다. 에이블리는 서울 성수동에 있는 1만㎡ 규모의 풀필먼트 센터에 빅데이터를 접목해 효율성을 끌어올렸다.
최근 판매 데이터과 검색량 등을 분석해 일주일마다 물류 알고리즘과 동선을 최적화한다. 무신사의 자회사 무신사로지스틱스도 자동 합포장 로봇 등을 도입해 하루 출고량을 지난해 11만2000건에서 올해 16만4000건으로 47% 끌어올렸다.
물류 역량을 앞세워 신사업에 나선 업체도 있다. 무신사로지스틱스는 해외 소비자들 사이에서 ‘K패션 역직구’가 뜨자, 올 하반기부터 해외 수출 브랜드를 대상으로 3자물류(3PL) 사업을 시작했다. 해외에서 브랜드 주문이 들어오면 재고 관리, 통관, 현지 배송, 반품 처리 등 전 과정을 대행해준다.
일본에선 2~3일 만에 제품을 배송해주는 시스템도 완성했다. 업계 관계자는 “규모가 작은 인디 브랜드는 해외 배송을 처리할 역량이 부족한데, 플랫폼이 이를 대행해주면 인기 브랜드를 확보할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천=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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