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정 지출이 생각만큼 경기 부양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다.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려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물가가 오르면 화폐 수요가 커진다. 화폐 수요 증가는 이자율을 밀어 올린다. 이자율 상승은 기업 투자 감소를 불러오고 투자 감소는 총수요 하락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재정 지출을 확대한 영향으로 높아진 물가는 경기 부양 효과가 소멸한 뒤에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고 높아진 수준에 머문다.(<그림1>E2→E3) 소비쿠폰으로 온 가족이 소고기를 사 먹을 수 있지만 소비쿠폰을 다 쓰고 나면 앞으로는 소고기를 사 먹기가 더 부담스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근로자들이 정부가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점을 예측한다고 해보자. 그 경우 근로자들은 곧바로 임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결과 임금이 오르면 기업의 비용 부담이 늘어 총공급이 감소하고, 재정 확대로 나타난 총수요 증가 효과를 상쇄한다. 이런 식으로 경기 부양책이 단기적으로도 물가만 올릴 뿐 경기를 살리는 효과는 내지 못한다고 보는 견해를 ‘정책 무력성의 명제’라고 한다.(<그림2>A→C)
정부가 돈을 뿌리면 고깃집 사장은 손님이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가격을 미리 올릴 가능성이 있다. 만약 가계가 미래 물가 상승을 예측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인다면 재정 지출이 소비를 자극하는 효과는 반감된다.
밀턴 프리드먼은 재정 지출이 기대한 효과를 못 내는 이유를 ‘항상소득가설’로 설명했다. 매달 받는 월급은 항상소득, 소비쿠폰처럼 비정기적으로 생기는 돈은 임시소득이다. 프리드먼은 항상소득이 높아지면 소비가 증가하지만 임시소득은 소비보다 저축을 늘린다고 설명했다. 임시소득은 앞으로 또 얻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 가격과 임금에는 경직성이 있다. 근로자들이 물가 상승 폭을 완벽하게 예측하고 그에 부합하는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고 해도 임금이 곧장 오르지는 않는다. 손님이 몰릴 것이 확실하다고 해서 가격을 바로 올리는 음식점 사장도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부가 정책을 실행하면 경제주체들은 기대와 행동을 바꾸고, 그로 인해 정책 효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