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8월 18일 오후 4시 51분그동안 국내 주거용 부동산은 분양형 주택(BTS·build-to-sell)이 주류였다. 시행사 등 개발 주체가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개발 자금을 조달한 뒤 분양 대금으로 갚고 손을 터는 식이었다. 기업형 임대주택(BTR·build-to-rent)은 많지 않았다. 개발 주체가 분양하지 않고 직접 월세를 받아 수익을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규모 자금은 물론 운용 전문성과 노하우가 받쳐줘야 하기 때문이다.
수년 전부터 SK디앤디 DL이앤씨 이지스자산운용 등 대기업과 기관투자가를 중심으로 ‘주거 운용’에 힘을 준 임대주택 브랜드를 개발해 공급하고 있지만 미미했다. 서울 등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급증하는 1~2인 가구의 임대주택 수요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임대주택 운용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부동산 운용사인 미국 그레이스타와 호주 더리빙컴퍼니가 한국에 진출한 배경이다.
한국에서도 도심 주택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하고, 아파트 등 자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주거 서비스를 누리려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혼인 시기가 늦어지고 출생률이 하락하는 등 다양한 요인으로 1인 가구도 급증했다. 부동산 서비스 기업 알스퀘어에 따르면 서울의 1인 가구 비중은 2015년 29.5%에서 2023년 39.3%로 급증했다. 8년 동안 서울 전체 가구가 9.4% 늘어날 때 1인 가구는 45.9%(51만 가구) 급증했다. 한 부동산 운용사 관계자는 “미국 호주 일본 등 주요국에서도 공통으로 나타난 현상이지만 유독 한국의 1인 가구 증가 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임대주택 시장에 투자하려는 움직임은 2~3년 전부터 활기를 띠었다. 세계 10대 연기금 중 하나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국내 디벨로퍼와 손잡고 올해 1월 임대주택 개발을 위해 5000억원 규모 조인트벤처를 설립했다. 모건스탠리를 비롯해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인터미디어트캐피털그룹(ICG), 하인즈 등도 국내 임대주택에 직·간접 투자하고 있다.
더리빙컴퍼니는 한국을 첫 해외 진출 거점으로 낙점했다. 성장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우선 청년층(18~40세)을 위한 학생 기숙사 및 도시형 임대주택 사업에 집중한 뒤 은퇴자와 고령층 등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통합 주거 플랫폼을 국내 시장에 구축할 방침이다. 그레이스타는 아시아 지역에서만 26억달러(약 3조6000억원) 규모 아시아퍼시픽펀드를 통해 호주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 투자하고 있는데, 내년부터 이 펀드에 한국 시장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단독주택이 대세이던 미국 주거 시장에 아파트형 임대주택을 대거 공급해 성공한 경험을 살려 한국 주거 시장의 판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임대차 관련 규제가 기업형 임대주택 시장이 성장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선 주택임대차보호법으로 임대료 인상률이 2년 계약 갱신 기준 5%로 제한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임대차 규제를 피하기 위해 숙박형 주거 시설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 중”이라며 “변화하는 주택 수요에 대응하고 주택 부족 문제 해소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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