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이찬혁이 주는 음악적 경험은 그 깊이가 상당하다. 하나의 사건과 상황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것에서 나아가 집요하게 파고들어 결국에는 인간의 내면을 통찰하고 광의의 삶을 생각하게 만든다.
솔로 1집 '에러'에 이어 2집 '에로스'로 또 한 번 아티스트 역량을 발휘했다. 앞선 '에러'에서는 교통사고를 당한 화자(이찬혁)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죽음을 부정하다가 끝내 이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를 총 11개 트랙에 걸쳐 전개했다. '에로스'에서는 남겨진 자의 시간을 풀어냈다. 소중한 이를 잃고 증폭된 내면의 결핍을 시작으로, 복잡하게 얽히는 감정, 사랑 등 다양한 이야기가 가지를 치고 뻗어나간다.
타인의 죽음으로 상실과 공허를 느끼던 화자는 '난 돌아버렸다'고 말하다가, 이상적이고 진실된 사랑을 좇던 그에게 '비비드라라러브'는 어디에 있냐고 다소 냉소적으로 묻는다. 'TV 쇼'를 보며 거짓된 웃음을 짓고, 내일이면 사랑이 완전히 멸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나아가고, 이상적 사랑으로 채워진 '빛나는 세상'은 오지 않더라도, 그것을 바라는 마음에서는 빛이 난다고 결론짓는다.
이찬혁 음악의 진가는 앨범의 첫 곡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이어서 들을 때 더 빛을 발한다. 놀랍도록 매끄러운 유기성을 지녀 마치 한권의 책을 읽듯 긴 호흡을 가져간다. 덤덤하게 음악으로 풀어낸 아티스트의 사유는 청자들에게 태풍과 같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이찬혁의 솔로 음반을 두고 '명반'이라는 호평이 나오는 이유다. 앨범을 대표하는 타이틀곡만을 듣게 되는 세상에서 더욱 귀한 음반이다.
모두가 이견 없이 좋아할 음악이냐고 묻는다면 'NO'다. 메시지뿐만 아니라 음악적 장르도 대중적이지 않은 데다가, 독특한 사운드도 곳곳에 배치돼 있다. 트랙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의 동요도 크게 일어난다. 이찬혁이 구축한 세계의 깊이감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감이 안 되느냐고 묻는다면 이 역시 'NO'다.
'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야…'라며 머릿속에 떠올랐던 물음표는, '어떻게 이런 잠재적 감정을 음악이라는 실체로 풀어내는 걸까'라는 질문으로 발전한다. 어디선가 부유하던 마음의 이야기들이 다소 또렷하게 가사로 적혀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앨범의 서사를 두고 종교적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인간사로 풀이되기도 한다. 덕분에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모든 감상은 고스란히 리스너들의 몫이 된다.


악뮤 이찬혁과 솔로 가수 이찬혁 두 개의 자아는 이제 확실히 분리된 듯하다.
이찬혁 개인의 변화가 가장 크게 와닿았던 때는 2019년 악뮤의 세 번째 정규앨범 '항해'를 발매했을 때였다. 동생 이수현과 함께하는 악뮤로 밝은 사운드, 개성 있는 노랫말을 줄곧 써왔던 그는 당시 본인의 자유와 철학을 다루기 시작했다. 군 복무 시절 배를 타고 항해하며 경험했던 깊은 고민과 사유를 풀어낸 것이었다. 타이틀곡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는 음원차트에서 대박이 났다.
그러나 당시 이수현은 "오빠에게 초점이 맞춰진, 오빠의 이야기가 있는 앨범"이라고 밝혔고, 실제로 악뮤가 추구해온 방향성과는 결이 달랐다. 이 역시 영리하게 받아들인 이찬혁이었다. 악뮤는 이후 '러브 리'로 다시금 본연의 색채를 찾았다. 그리고 이찬혁은 데뷔 8년 만에 솔로로 새 출발에 나서며 마음껏 자신의 영감을 쏟아내고 있다.
3년 전 솔로로 데뷔할 당시 이찬혁은 이같이 말했다. "원하는 이미지와 노래를 하기 위해 내 앨범을 만들기 원했고, 그게 즐거웠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3년 뒤 2집을 들고 온 이찬혁은 KBS1 '열린음악회'를 컴백 무대로 택했다. 세미 정장 차림에 선글라스를 끼고, 곱슬머리 위에는 검은색 모자를 썼다. 코러스, 댄서들과 어우러져 가스펠 사운드의 '멸종위기사랑'을 부르는 그의 모습을 보고 "마이클 잭슨이 떠올랐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악뮤로 해 온 것들이 호평받고 많은 사랑을 받은 것에 감사함이 있지만, 이게 다가 아니라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걸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다리꼬지마'로 어쿠스틱 듀오라는 말이 붙었을 때 '아닌데, 난 댄스인데'라고 생각해 그걸 했고, YG에 처음 입사했을 때 어쿠스틱이라는 틀에 박혀 있는 게 괴로워서 일렉트로닉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당시엔 모두가 웃기도 했지만, 내 방식대로 '다이노소어'를 냈다."
방식은 희귀할지언정, 알맹이는 아주 근원적이고 보편적이다. 그 덕에 공감이 생겨난다. 결국 좋은 음악의 힘은 시대가 지나도 변치 않는다는 걸 증명해낸 이찬혁이다. '멸종위기사랑'은 음원차트에서 역주행을 시작, 19일 오전 9시 기준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인 멜론의 실시간 차트에서 40위를 기록 중이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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