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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해방시킨 샤넬…패션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민은미의 명품 스토리텔러]

입력 2026-01-23 17:48   수정 2026-01-23 17:49


옷을 만든 것이 아니라 여성을 해방했다. 가브리엘 샤넬에 대해선 감히 이렇게 평가할 수 있다.

20세기 초 파리 사교계의 무도회장과 런던 하이드파크의 마차 행렬 속 여성들은 인형극 속의 움직이는 인형처럼 보였다. S밴드 코르셋은 허리를 잔뜩 조여 가슴을 앞으로, 엉덩이를 뒤로 밀어내 S자 곡선을 만들었다. 허리는 극도로 잘록해 보였지만 척추는 휘고 복부는 앞으로 돌출되는 불편한 자세가 강요됐다.

이뿐 아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폭넓은 스커트, 한 벌에 수 킬로그램에 달하는 비단과 레이스 그리고 장식과 주름, 리본, 러플을 아낌없이 사용한 화려하고 무거운 이브닝드레스가 그 위를 덮었다. 실과 천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모든 무게는 여성의 ‘자유’를 짓누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사회 변화 속에서 여성들은 더 이상 몸을 옥죄는 패션을 감내하지 않았다. 그 변화의 흐름을 우아하게 완성한 것이 가브리엘 샤넬이었다. 그녀의 디자인은 절제되면서도 세련됐다. 무엇보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다. 코르셋을 조이던 끈을 풀었다. 그 자리에 간결하고 모던한 라인이 들어서게 했다. 샤넬이 바늘로 꿰맨 한 땀 한 땀이 여성의 호흡을 넓혔다. 걸음을 가볍게 했으며 패션을 권위의 장식에서 자기표현 자체로 바꿔놓았다.
여성을 숨 막히게 한 ‘코르셋’이라는 강철 족쇄
숨 막히는 코르셋이 어떻게 여성을 옥죄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두 장면이 있다.

“더 조여. 개미허리처럼.” 어머니의 목소리가 하녀의 손을 재촉한다. 끈이 조여질수록 딸의 호흡은 얕아지고 눈빛이 흐려진다. 지난해 전 세계적 인기를 끈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 첫 화에서 사교계 데뷔를 앞둔 상류층 아가씨들은 부유한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코르셋에 몸을 맡긴다. 잘록한 허리는 곧 경쟁력이었고 호흡곤란은 우아함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됐다. 이는 1813년 런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시대를 지배한 미적 강박감이 압축된 단면이다.


이런 장면은 영화 '타이타닉'에도 나온다.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어, 로즈. 살아남으려면 이 규칙을 따라야 해.” 1912년 대서양을 건너는 초호화 여객선 안에서 딸의 허리를 타이트하게 졸라매는 어머니가 나온다. 어머니 루스는 가문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딸 로즈를 자산가 칼과 약혼시켰다. 사랑 없는 결혼이었지만, 그것이 곧 생존이었다. 코르셋의 끈은 미(美)의 규격을 강요하는 동시에 신분과 부를 보장하는 족쇄였다. 20세기 초반 여성의 몸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전시품이었다. 코르셋은 그 틀을 유지하는 강철 구조물이었다. 1920년대 초 샤넬이 그 끈을 잘라낸 것이다.
가브리엘 샤넬, 해방의 실을 꿰다
샤넬은 남성복에서 영감을 얻어 신축성과 통기성이 뛰어난 '저지'를 여성복에 과감히 도입했다. 탄력 있는 저지 원단은 그동안 속옷이나 운동복에나 쓰이던 소재였다. 하지만 샤넬의 손에서 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흐르는 우아한 드레스가 됐다. 코르셋을 대체한 곧은 라인의 재킷, 마린 셔츠, 일자 팬츠를 입고서야 여성들은 비로소 숨을 쉬면서 걸음을 경쾌하게 옮길 수 있었다. 또한 치마 길이를 과감하게 짧게 하여 활동성을 높였다. 지금은 당연한 의복들이지만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샤넬이 제안한 것은 단순히 옷의 디자인을 바꿔보자는 것이 아니었다. 깃털과 레이스의 무거운 장식을 걷어내고 대신 간결한 라인과 활동성을 입힌 스타일은 그 자체가 선언문이자 해방이었다. 샤넬 이후 패션은 더 이상 불편함을 대가로 요구하지 않았다. 편안함과 우아함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녀가 증명했다.


1926년 그녀는 '리틀 블랙 드레스'(LBD)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후 검정이 더 이상 애도의 색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시크의 표식이 됐다. 그보다 앞선 1921년 샤넬 No.5는 향수의 규칙을 깨고 여성의 자아를 향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특히 메릴린 먼로가 남긴 “잘 때 No.5만 입는다”는 말은 이 향수를 강렬하게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그녀가 만든 한 방울의 향이, 한 벌의 드레스가 한 벌의 수트가 여성을 타인의 시선 속 장식품에서 자신의 주인으로 바꿔놓았다.
샤넬, 옷을 넘어 ‘문화’를 만들다
가브리엘 샤넬. 흔히 ‘코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녀는 1910년 파리에서 작은 모자 가게를 열며 패션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시작된 ‘샤넬 하우스’는 단순한 브랜드를 넘어 패션을 넘는 문화 코드 자체를 창조했다. 모자 장사에서 시작해 점차 옷과 화장품, 주얼리로 영역을 확장하며 그녀만의 간결하면서도 혁신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나갔다.


1920년대에 코르셋을 벗겨내고 향수로 새로운 여성 시대를 연 이후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1932년 대공황 한가운데 발표한 하이 주얼리 컬렉션은 별·혜성·리본 같은 여성스러운 모티프를 다이아몬드로 재해석해 보석에 움직임을 불어넣었다. 1955년 나온 2.55 퀼티드 백은 가방에 연결한 체인 스트랩으로 여성들의 손을 자유롭게 했다. 1956년에 선보인 샤넬의 트위드 수트는 남성 헌팅 재킷의 실용성과 우아함을 여성복에 접목하며 여성들에게 활동성과 품격을 동시에 선사했다. 1953년에 탄생한 투톤 펌프스 역시 편안함과 세련됨을 동시에 담아 여성들의 일상을 완성했다.

이처럼 가브리엘 샤넬은 옷을 통해 여성의 몸을 해방했으며 다양한 아이템을 통해 그 자유를 일상 속 스타일로 승화하게 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샤넬은 단순한 옷이 아닌, 입는 철학으로 받아들여진다. 샤넬은 1971년 1월 10일 리츠 호텔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유언에서 ‘꿈’을 말했다. “내 손끝에서 피어난 전설이 더 발전하고 번성하기를 꿈꾼다”라고.

그녀의 꿈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50여 년이 지난 오늘, 샤넬은 전 세계 여성들의 옷장뿐이 아니라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샤넬 이후의 패션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민은미 주얼리 칼럼니스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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