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일본 석유화학업계는 지금의 한국과 똑같은 고민을 했다. 핵심은 중국·중동의 부상과 공급 과잉으로 경쟁력을 잃은 나프타분해설비(NCC)의 ‘질서 있는 퇴장’이었다. 이에 대한 해법은 2014년 11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내놓은 ‘석유화학산업 시장 구조에 관한 조사 보고서’에 담겼다. 보고서는 ‘2020년까지 에틸렌 생산량 100만t 감축’ 등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해 민간기업에 구조조정의 명분을 줬다. 선제적으로 감산할 경우 경쟁사만 이익을 볼 수 있는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정부가 나서서 풀어준 것이다.동시에 통폐합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법적 걸림돌을 과감히 없앴다.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독과점과 담합은 예외로 인정한 게 대표적이다. 공정거래법에 막혀 통폐합이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다. 통폐합한 기업에는 세제 혜택과 전기료 감면, 펀드를 통한 보조금 지급 등 당근을 줬다.
규제 완화와 인센티브, 정부의 명확한 지침 등 삼박자가 어우러진 덕분에 NCC 통폐합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보고서 발표 후 일본 1위 미쓰비시케미컬과 2위 스미토모화학은 에틸렌 공장 문을 일부 닫았고, 같은 지역에 있는 공장 간 통폐합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당시 연 720만t이던 일본의 에틸렌 생산량은 3년 만에 10% 이상(80만t) 줄어들었다.
10년 전 일본과 같은 상황을 맞이한 우리는 어떤가. 일단 구조조정을 이끌 조타수가 보이지 않는다. 세밀한 구조조정 로드맵은 차치하더라도 모든 일처리가 임기응변이다. 한화와 DL그룹이 충돌한 여천NCC 사태가 대표적이다. 지분 절반을 보유한 DL이 자금 지원을 거부하면서 여천NCC는 부도 위기에 몰렸다. 정부의 태도는 어정쩡했다. 평소엔 NCC 감축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정작 일이 터지자 “폐쇄는 안 된다”고 했다. 정부와 여론의 압박에 DL은 자금 지원을 결정했지만, 상반기 1566억원의 손실을 낸 여천NCC를 둘러싼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10년째 진행 중인 일본의 석유화학 구조조정은 이제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2028년 일본 에틸렌 생산량은 연 430만t으로 한국(연 1280만t)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반면 한국은 지난 10년간 에틸렌 생산량이 50% 이상 늘었다. 이들 대부분은 적자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NCC 시설을 줄여야 하는지,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등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한국 석유화학 기업이 10년, 2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정부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도와야 한다. 이게 일본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석유화학 구조조정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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