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 전 일이다. 한여름에 에어컨이 고장 나 부랴부랴 주문했더니 약속한 날짜에 설치기사 두 명이 방문했다. 6층 빌라의 꼭대기 층, 에어컨 실외기를 설치하기 위해선 난간 밖 작업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국내 대표 에어컨 기업의 로고가 찍힌 조끼를 입은 선배 기사가 난간을 훌쩍 넘더니 능숙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잠깐 내다보는 사이 눈을 의심했다. 20m 높이의 지붕인데 로프도 걸지 않고, 안전모도 쓰지 않았다. “위험하니 안전장비를 하시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기사가 10여 분 뒤 후배 기사를 불러 안전모와 로프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착용 후 ‘인증샷’을 찍고는 이내 다시 벗어던지고 작업을 이어갔다.그러고는 올여름, 실외기가 탈이 나 AS를 요청했더니 다른 기사가 왔다. 이번에는 다행스럽게도 안전장비를 잘 착용하고 작업을 마친 기사에게 2년 전 아찔했던 이야기를 하니 돌아온 말이다. “하하, 태반이 그래요.”
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정부의 산재 감축 방안에 빠져 있는 게 있다. 바로 산재 피해자이자 당사자의 안전의식과 책임감이다. 산재의 상당수는 기업이 안전 문제를 비용으로 생각하고, 공기 단축을 생명처럼 여기는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지만, 근로자의 안전불감증이나 이해 못 할 행동으로 인한 사고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기업은 물론 언론마저도 이 같은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한다. “사람이 죽었는데”라며 자칫 몰상식하고 인정머리 없거나 돈밖에 모르는 기업의 주구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고 조사 과정에서 기업이 “근로자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언급할라치면 바로 괘씸죄가 적용되는 게 현실이다.
“비용 아끼려고 안전조치 안 하는 것은 바보짓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 된다”는 이 대통령 말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산재는 기업만 두들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도 동네 곳곳 작은 공사 현장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한 장면들이 여전하다. 기업에 지우는 책임만큼이나 근로자 개개인이 안전의식을 갖게 하고, 스스로 초래한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도 물어야 한다. 산재에서 기업이 최종 책임자라면 노동자는 피해자인 동시에 1차 책임자다. 보호 객체 이전에 예방 주체인 근로자의 안전불감증,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말 못 하는 불편한 진실의 상자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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