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SF), 여성, 그리고 김초엽. 지금 한국 문학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소설가 김초엽은 한국 문학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다. 2017년 단편 ‘관내분실’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부문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이후 첫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 40만 부 이상 판매되며 한국 SF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그럼에도 그는 “새 소설을 쓸 때마다 매번 스스로에게 새로운 미션을 부여한다”며 “작가라는 직업은 스스로 갱신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4년 만에 새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를 내놓은 그를 지난 19일 서울 연희동 SF 전문 책방 ‘페잇퍼’에서 만났다.
로봇과 양자역학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상상력을 관통하는 단어는 ‘신체’와 ‘이해’다. 다른 종의 피부를 욕망하는 존재들(수브다니의 여름휴가), 한 몸을 공유하는 두 개의 자아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양면의 조개껍데기), 양자컴퓨터 속 데이터 형태로 집단 이주해 신체가 없어진 인류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찾으려는 마음(달고 미지근한 슬픔)….
인공지능(AI) 시대, 인류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작업으로 읽힌다. 김 작가는 “AI 관련 포럼에서 연사 섭외가 많이 들어오는데 필사적으로 피해 다니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AI 시대의 문학을 섣불리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았다. “인간이 영원히 침범받지 않을 본질이라는 게 있지는 않은 것 같다”면서도 “누군가 AI에 독창적인 질문을 선택해 넣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창작이고, 현재까지는 AI가 그 과정까지 대체할 순 없다”고 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인류의 훌륭한 점은 지금까지 지동설, 진화론처럼 인류의 통념이 무너진 경험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왔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받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겠죠. 하지만 결국 새로운 철학을 찾았잖아요. AI 이후에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작가는 AI를 ‘뛰어난 협업자’라고 표현했다. “자료를 조사할 때 AI가 거짓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럴듯한 거짓말’을 쓰는 소설 창작자로서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젊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진 않을까. 그는 “특정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잡자고 생각하는 편”이라며 “계속해서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주류 의견에 반대되더라도 그게 내 신념에 맞는다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되뇐다”고 말했다. 이어 “생소한 분야의 책, 낯선 나라로의 여행, 모르는 분야의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인풋’을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오는 10월부터 집필할 예정인 차기작 장편소설 역시 여행지에서 영감을 받았다. 말레이시아 여행 중 히잡을 쓴 젊은 여성 유튜버를 보며 ‘종교가 이들에게는 신념이기보다 피부 같은 일상이구나’라고 깨달은 데서 출발한 이야기다. 그는 “다음 장편은 믿음에 관한 얘기”라며 “사람들이 공통적인 믿음이 깨지는 경험을 하더라도 어떻게 그 믿음을 유지하는가를 좀 밝게 다뤄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출간할 때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작가의 숙명은 자신의 과거 작품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 이런 경쟁을 의식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과거보단 지금의 제가 잘 쓴다”며 시원하게 웃었다. “매 작품 과거의 내가 쓰지 않은 것, 쓰지 못한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한다”는 말은 그이기에 가능한 답이다. 김 작가는 이번 책 ‘작가의 말’ 마지막에 이런 약속을 적었다. “계속 열심히 쓸게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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