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옆나라 일본엔 요즘 코인을 사모으는 기업들이 화제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기업이 사내 유보금 등으로 비트코인 등을 사서 축적하는 현상입니다. ‘비트코인 트레저리’, ‘암호화폐 트레저리’ 전략이라고도 합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미국에서 유행했던 건데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 상륙한 겁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많은 것들은 일본을 거쳐 우리 사회에 들어오지 않았던가요. 야구가 그랬고, 팝송이 그랬고, 신문방송 시스템이 그랬죠. 많은 기업 문화도 그랬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기업들도 비트코인을 곧 사모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뭔가 뒤처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정말 그럴까요?
올해 상반기 동안 비트코인을 보유한 기업의 수는 70곳에서 134곳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세계 여러 증시 상장 기업들 중에 장부상 비트코인 보유 사실을 명시한 경우만 따진 겁니다. 미국 기업이 41곳, 캐나다 29곳, 일본 8곳, 영국 7곳 등입니다.
하지만 보유량 기준으로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비트코인 보유량 상위 20개 기업을 따지면 미국 16곳, 중국 2곳, 일본과 캐나다가 각각 1곳씩입니다. 이들 기업이 보유한 비트코인은 98만 개를 넘어섰습니다. 비트코인의 정해진 공급량이 전체 2100만 개인데 4.6%가 넘는 규모입니다.
물론 이 중에는 암호화폐 거래소나 채굴기업처럼 비트코인이 전문 분야인 기업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면면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비트코인 트레저리 흐름을 주도해온 스트래티지(옛이름 마이크로스트래티지)가 대표적입니다.
스트래티지의 비트코인 보유량은 63만 개에 육박합니다. 현재 가격으로 100조원어치 정도 되는 양입니다. 전체 기업 보유량의 절반을 훌쩍 넘습니다. 원래는 소프트웨어 회사였는데 지금은 사실상 ‘비트코인 회사’가 됐습니다. 2020년부터 비트코인을 회사에 쌓아두기 시작했고 그 덕에 현재 수익률은 60%가 넘습니다.
스트래티지의 성공을 이끈 마이클 세일러 회장은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됐습니다. 사실 그의 전략은 단순하고 대담합니다. 주식과 채권을 발행해서 돈을 모은 뒤 그 돈으로 비트코인을 사는 식입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 주가도 따라 오릅니다.
그러면 또 주식과 채권을 발행해서 비트코인을 더 삽니다. 물론 하락장도 있었지만 이 작업을 꾸준히 반복했습니다. 비트코인 상승을 철석같이 믿었다는 거죠. 도널드 트럼프 재선 뒤 지난 9개월 동안 보유량을 2배 늘린 결정은 그의 선명한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스트래티지의 성공은 일종의 모범 사례가 됐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비트코인 트레저리 기업 메타플래닛은 원래 호텔을 운영하는 기업이었는데 지난해부터 비트코인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주식과 채권을 발행해 지금까지 1만8888개를 사들였으며 내년 말까지 비트코인 전체 발행량의 0.1%인 2만1000개 매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상위권 기업들 중에선 이 밖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트럼프미디어앤테크놀로지(1.5만 개), 테슬라(1.15만 개), 블록(옛이름 스퀘어, 8692개) 등이 눈에 띄고 넥슨(1717개)도 반갑습니다.
이들 기업이 비트코인을 쌓아두면서 제시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 인플레이션 헤지입니다. 비트코인은 애초에 정해진 공급량이 있으니 확실한 희소성이 있다는 계산입니다. 둘째, 이런 조건에서 유휴 현금을 은행에 돈을 맡겨놓는 것보다 비트코인을 사두는 게 훨씬 이익이라는 겁니다. 셋째, 전통적 사업의 한계를 벗어나 디지털 자산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교두보 역할도 합니다. 넷째, 이런 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코인 업계와 투자자들이 주가를 올려줍니다. 결국 주식이 기업의 순자산가치(NAV), 이 경우엔 1주당 비트코인 보유액수를 초과해서 거래되는 건데 적어도 지금까지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보유량뿐 아니라 보유할 수 있는 역량에까지 투자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물론 위험도 만만치 않습니다. 가장 큰 위험은 하락장에서 일어납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때야 모두가 행복하지만 떨어질 때는 재무적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특히 작은 기업들은 비트코인 매입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채권들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 강제로 비트코인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도 오면 자칫 급매와 가격 하락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전체 비트코인 시장이 휘청일 수도 있죠.
순자산가치를 넘는 프리미엄도 하락장에서는 숨통을 막을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상승할 것을 낙관하면서 생성된 프리미엄은 반대로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면 빠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성장이 멎게 됩니다. 그러면 프리미엄을 지불할 이유가 없게 되면서 다시 악순환을 형성합니다.
비트코인 트레저리 전략을 구사하려는 기업들이 전문적인 인력을 기존에 보유한 경우는 드물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전략의 집행에서 중요한 운영 요소, 이를테면 언제 살지, 얼마나 살지, 외부에는 어떻게 알릴지 등은 대개 외부에서 자문 형태로 아웃소싱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외부 계약에서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 수수료를 지급받게 됩니다. 기업에 과도한 위험을 떠안기는 도덕적 해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회사의 재정 상황과 비트코인의 보유 비율, 본업 경쟁력, 리스크 관리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트레저리 전략이 스트래티지 같은 소수 기업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결국 좀비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합니다.
성공과 실패를 알기 힘든 새로운 금융 실험이 또다시 막을 올렸습니다.
김외현 비인크립토 동아시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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