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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 '혁신'이 불러온 역설…XBRL에 가려진 정보 [XBRL 공시의 민낯③]

입력 2025-08-21 14:13  

이 기사는 08월 21일 14:1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2023년부터 사업보고서 주석 공시에 국제표준 전산언어(XBRL)가 의무화됐다. 그러나 정작 일반투자자가 읽는 공시는 오히려 더 불편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XBRL 도입 취지는 데이터 표준화와 자동화를 통한 분석 편의성이었지만 사람이 보던 보고서의 가독성을 해치면서 상장사 공시의 본질이 훼손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란 투성이 사업보고서에 가독성 저하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일부 상장사의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2023년부터 사업보고서의 표기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XBRL 주석 공시가 의무된 곳들이다.

양식이 바뀐 뒤 사업보고서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찾기는 훨씬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과거 4행 5열로 정리되던 표가 XBRL 도입 이후에는 9행 14열짜리 표 여러 개로 흩어졌다. 각 표에는 대다수가 데이터가 없이 공란으로 표기됐다.

금감원은 XBRL 문서를 사업보고서에 그대로 불러와 표시하도록 하는 정책을 펼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공시된 정보간 불일치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XBRL은 기업의 재무 데이터를 ‘기계가 읽는 언어’로 바꿔주는 시스템이다. 기계가 읽는 만큼 다차원 구조로 작성해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를 사람이 보는 평면 표로 구현하다보니 표 구조가 복잡해지고 필요없는 공란을 표기하게 됐다. 사람이 눈으로 보기엔 적합하지 않게 바뀐다는 의미다.

이에 공시를 확인하려는 투자자는 어느 표에 어떤 금액이 대응되는지 일일이 찾아봐야한다. 한눈에 재무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감사보고서를 다시 찾아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감사보고서는 외부 감사인이 작성한 재무제표 검증용 자료로 사업보고서에 첨부되는 부속격 문서다. 주객이 전도됐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XBRL 오류와 관련된 본지 보도 이후 금융감독원은 XBRL 뷰어 등과 관련된 일부 오류에 한해 수정에 착수했다. 최근 공시부터 2023년 사업보고서까지 역순으로 작업을 진행할 방침이다.

다만 감사보고서와 XBRL 문서 구조를 동일하게 일치시키고, 해당 XBRL 문서를 사업보고서로 불러오는 현행 방식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XBRL 공시 제도의 근본 목적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데이터 자동화와 국제투자자 편의를 위해 도입한 제도라면 무엇보다 활용성과 신뢰도가 확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데이터 전문기관 관계자는 “대형 기관과 데이터 기업은 시스템적으로 이를 해석할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일반 투자자와 중소 기관은 난해한 주석 공시를 해독해야하는 수준”이라며 “공시의 본질은 투자자가 기업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제공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두 마리 토끼 쫓다 공시 본질 훼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같은 XBRL 기반이라도 ‘인라인 XBRL(iXBRL)’ 방식을 채택해 투자자 불편을 최소화했다. iXBRL은 사람이 읽는 사업보고서에 XBRL 태그를 삽입하는 방식이다. 투자자는 기존 공시문서를 그대로 읽을 수 있으면서 동시에 태그 처리된 데이터는 기계가 추출할 수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09년부터 단계적으로 XBRL을 도입했고 2019년부터는 모든 기업에 iXBRL 제출을 의무화했다. SEC는 이를 통해 ‘기계가 읽는 데이터’ 확대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투자자 가독성도 지켰다.

EU도 비슷한 접근을 택했다. 2020년부터 ‘유럽 단일 전자보고 형식(ESEF)’을 통해 유로존 상장사에 iXBRL 제출을 의무화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iXBRL 형태를 도입하면 상장사가 직접 공시하기가 어려워 외부 컨설팅을 받아야하는 등 비용도 크고 작성 부담도 커진다는 점을 고려했다”며 “장기적으로 도입을 고려할 수 있으나 국내 제도 도입 당시 유관기관 등과 논의했을 때 현행 방식이 더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iXBRL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공시 투명성과 분석력을 높이되 시장 참여자의 접근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원칙이 유지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국내에선 금감원이 XBRL 제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다른 대안을 고민하지 않은 채 행정편의주의적 정책 설계로 본래 목적과는 동떨어진 제도가 만들어졌다는 지적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정책 목표가 투자자의 편의를 위한 데이터 표준화 및 공시 가독성 향상보다는 데이터 작성 및 검증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라며 “결과적으로 XBRL이 사업보고서에 단순 첨부되는 형태로 운영되면서 원래 XBRL 도입 목적이 변질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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