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작가인 지인이 여름 동안 도쿄에 머물 거라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뉴욕으로 떠나서 두어 달씩 있다 오더니 이번엔 일본행이란다. 얼마 전까지는 제주도의 바닷가 집을 렌트해 3년쯤 살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여행에서 영감을 얻고 사진을 찍고 전시를 한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용감하게 산다.
오랜만에 만나 함께 차를 마시면서 나는 한없이 그가 부러웠다. 그 친구가 그런 식으로 자유롭게, 작가답게(?) 사는 동안 나는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상하게도 늘 일에 발목이 잡혀 있다. 떠나지 못하는 핑곗거리가 열 손가락을 넘긴다. 그러면서도 늘 여행을 꿈꾸고, 세상 어딘가로부터 둥둥대는 북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가 재즈 음악으로 바뀌는 환청에 이르면 나를 부르는 미지의 소리에 취해 그저 맥락 없는 상상을 한다.
저 멀리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언덕, 나는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팔베개하고 누워 있다. 비릿한 실바람에 머리카락이 넘실대고 어디에선가 삐걱거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온다.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르는 서머타임(Summertime)이면 좋겠다. 나른한 재즈 선율에 취해 스르르 잠에 빠져든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세상이 온통 별빛으로 물들어 있다. 냇 킹 콜이 노래하는 ‘스타더스트(Stardust·별무리)’가 흐른다. 감미롭게 퍼지는 현악 오케스트라가 자장가처럼 온화하지만 막 단잠에서 깨어나 몸이 가볍다. 정신을 차리고 여행을 떠나올 때를 생각해본다. 나는 결국 떠났고 열 가지가 넘는 핑곗거리를 뿌리쳤다. 이제 알았다. 여행은 떠나는 게 아니라 이별하는 거다(아니, 뿌리치는 거다). 내 안락한 집으로부터, 소중한 일터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다. 떠나는 건 다시 미룰 수 있지만 이별은 때가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 속에서는 맨해튼 트랜스퍼의 ‘루트 66(Route 66)’을 들었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는 여행, 로드트립을 상징하는 재즈 넘버다. 흥겨운 스윙 리듬에 어깨를 맞추고 손바닥은 운전대를 두드렸다. 나는 난생처음 운전면허를 딴 것처럼 들떠 있었고 낡은 라디오 주파수를 깨작대듯 일부러 볼륨을 만지작거렸다. 이어서 프랭크 시내트라가 노래하는 ‘컴 플라이 위드 미(Come Fly with Me)’를 고른다. 영화 ‘바닐라 스카이’의 톰 크루즈가 되어 나 홀로 떼창을 한다.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지금 혼자만 떠나온 여행이었던가! 나의 맥락 없는 상상력을 조금 수정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인과 함께라면 어떨까, 가족과 함께라면 어떨까? 이 좋은 노래들을 함께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나는 이 쳇바퀴 같은 세계에서 혼자가 아니다. 그래, 고속도로를 달리기 전으로 되돌아가 보자. 나처럼 이별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멋지게) 손을 내민다. 쳇 베이커가 노래한다. ‘레츠 겟 로스트(Let’s Get Lost)’를, “우리 함께 어디든 가버리자. 길을 잃더라도 좋아~” 멀리서 들리던 북소리가 쿵쿵대며 심장으로 온다.
남무성 재즈평론가·아르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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