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은 많은 말을 한다. 무언가를 잔뜩 움켜쥔 손, 반창고를 감은 손, 투명한 피부 아래 파란 핏줄이 드러난 손, 매끈하게 다듬은 반짝이는 손톱, 언제인지도 모르게 상처 입은 손…. 어쩌면 얼굴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 손을 다루며 이름을 알린 동양화가가 있다. 이진주(45)다.
지난 13일 서울 안국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개막한 이진주 개인전 ‘불연속연속’에서 그를 만났다. 회화를 넘어 입체와 설치까지 54점의 작품을 들고나온 이진주 작가는 “존재와 부재, 연속과 불연속의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인물은 늘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하고 있고, 손이나 돌로 얼굴의 일부를 가리거나 눈을 감은 채다. 이런 장면들이 상상을 자극한다. 동양화를 말할 때 ‘여백의 미’가 가장 먼저 등장하지만 이진주 작가는 그 여백을 완전히 소거해 그림의 형상만을 남긴다. 역설적이게도 여백이 사라진 자리에 파편화한 신체의 일부, 장면의 일부가 더 강렬하게 도드라진다.
이번 전시에선 3층 전시장에 걸린 ‘대답들’(2024) 연작에서 블랙 페인팅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손을 묘사한 작품 29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다양한 사건과 상황을 연상시킨다. 4행 8열로 배치돼 세 개의 자리가 비어 있는데, 작가는 “그 여백마저 작품의 일부로서, 문장과 문장 사이 쓰이지 않은 것들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이진주 작가의 작품에는 상징들이 있다. 붉은 실, 탄 종이, 잘린 나뭇가지, 무화과 등이다. 붉은 실은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의미. 불씨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탄 종이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나타낸다.
“작업실에서 종이를 태워보면 불이 꺼진 것처럼 보여도 계속 타들어 갑니다. 정지된 평면이지만 여전히 ‘진행형’인 것 같은 상태,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이미지를 전하는 셈이죠.” 여름 한철 잠깐 나왔다가 금세 물러버리는 무화과, 수명을 다한 가지 안에 뽀얀 속살을 드러내는 나무 역시 그에겐 반전의 사물들이다.
크기뿐만이 아니다. 곡선형 캔버스, 벽에서 띄운 형태의 캔버스,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캔버스 등이 대거 전시됐다. 방향에 따라 달라 보이고, 옆면과 뒷면까지 작품을 샅샅이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이번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관 전시는 이진주와 이정배 작가의 캔버스 실험들이 층층이 펼쳐진다. 지하 1층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는 ‘비좁은 구성’(2021~2023)은 네 폭의 가로로 긴 캔버스를 사각의 링 형태로 이어 구성한 ‘입체 회화’다. 전체가 하나의 풍경이지만 끊어서 볼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형태.
작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편향된 시각의 불완전함, 다변적인 대상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작품은 캔버스 뒷면에도 흑백의 회화가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꼭 고개를 숙여 안을 들여다보길 권한다. 회화 작품만으로 미술관의 전체 공간을 입체적으로 가득 메우는 새로운 경험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슬픔과 돌’(2025)은 여섯 개의 흰색 장막이 사선으로 줄지어 연결된다. 바위와 인물, 식물, 사물이 뒤엉킨 모습으로 가로 3.8m, 세로 3.2m. 이진주 작가의 변형 캔버스 시리즈 중 최대 규모다. ‘겹쳐진-사라진’(2025) 역시 두 개의 기다란 직사각형 패널이 한 면만 맞닿도록 결합해 조각처럼 설치됐다. 오목한 안쪽블랙 페인팅은 가녀린 인물이 거대한 돌을 품고 있다. 한쪽에선 보이고, 다른 한쪽에선 보이지 않는 회화. 인물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작가는 장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복잡하게 얽힌 경험과 기억이 겹겹의 막처럼 존재한다. 그 막을 들추고 스치는 감각을 회화로 풀어내고 싶었다.”
이진주 작가의 회화가 갖는 힘은 사물을 보는 방식에 있다. 그가 그리는 대상들은 일상과 생활 공간에서 실제 마주하는 것들, 기억 속에 잔존하던 이미지와 이야기들이다. 오래 묵은 회화의 기법을 사용하지만 결코 평면 위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시공간으로 옮겨가게 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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