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음악 단체.”(안톤 브루크너) “나는 이 악단의 친구이자 찬미자.”(요하네스 브람스)
만추의 계절 11월 19일과 20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찾아오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위대한 음악가들이 보낸 찬사다. 183주년을 맞은 빈 필은 올해 내한 공연을 모처럼 협연자 없이 진행한다. 자신들에게 역사상 최고 평가를 내린 브루크너와 브람스의 레퍼토리로 진정한 빈 필의 정수를 전하겠다는 의지다. 그것도 ‘독일 사운드의 수호자’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자와 함께.틸레만은 ‘독일어권 낭만 레퍼토리의 수호자’로 불린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마지막 제자로 게르만 민족의 음악적 정체성을 굳게 지켜온 인물이다. 2019년 빈 필 내한 공연에서 클래식 음악가를 환호하게 한 ‘꿈의 조합’이 6년 만에 다시 성사된 것이다.
틸레만은 고집스러운 지휘자다. 독일 후기 낭만주의 음악에 인생 대부분을 바쳤다. 다양한 레퍼토리로 폭을 넓히는 요즘 지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독일어권 음악에 대한 집착 덕분에 브루크너,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곡 해석에선 현존하는 지휘자 중 틸레만과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다. 레퍼토리 폭이 좁다는 한계에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 등 곳곳에서 그에게 음악감독을 맡긴 이유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틸레만은 그의 시그니처 레퍼토리로 불리는 독일 낭만주의 음악을 선사한다. 11월 19일 슈만 교향곡 3번과 브람스 교향곡 4번을, 20일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들려준다.
빈 필과 틸레만의 조합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그 자체로 명성이 높다. 틸레만과 빈 필은 2019년과 지난해 ‘빈 필 신년 음악회’를 함께했다. 지난 4월에도 빈 음악 심장부인 무지크페어아인에서 빈 필과 브람스 교향곡 4번을 지휘했다.
틸레만은 카라얀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후계자를 자처한다. 정확한 음색, 섬세한 프레이징, 강렬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아우라를 지닌 그의 해석은 이들 거장의 연주를 떠올리게 한다. 그만의 현대성도 겸비하고 있다. 틸레만은 독일 음악의 정수를 고민할 뿐 아니라 문화재를 수집하며 민족성도 고찰한다. 클래식 음악계 레퍼토리가 다양해질수록 독일 음악에 대한 그의 치열한 고집은 고고히 빛난다.
틸레만이란 장인에게 감사를 전할 만하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아름다움을 눈앞에서 만끽하는 황홀경이 우리 시대에도 가능하게 됐으니.
6년 만에 내한…11월 서울 예술의전당서 공연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공연을 보며 음악인의 꿈을 키웠다.
비올라 전공으로 베를린 음대에 입학한 뒤 카라얀과 만났다.
그 인연은 틸레만 음악 인생의 결정적 순간이 됐다.
카라얀의 제자, 독일 낭만주의 수호자로카라얀은 1967년부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를 운영했다. 독일 대표 음악제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견줄 만한 축제를 만들고 싶은 게 이유였다. 이 축제에 조수로 지원한 틸레만은 카라얀 곁에서 그의 표현법과 소통법을 낱낱이 체화했다. 틸레만이 이 축제의 예술감독을 맡은 건 세월이 한참 흐른 뒤인 2013~2022년 얘기다. 1980년 베를린 필하모닉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공연에서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데뷔한 그는 겔젠키르헨, 카를스루에, 뒤셀도르프 등 독일 도시에 있는 악단을 거치며 지휘 경험을 쌓았다.
1988년엔 뉘른베르크 오퍼의 총감독이 됐다. 반주 연주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스물여덟 살 때 극장의 최정상에 오른 경험은 “극장 운영을 이해하려면 밑바닥부터 알아야 한다”는 그의 지론에 영향을 미쳤다. 바그너와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로 활약한 그를 독일 수도에서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베를린 도이치 오퍼는 1997년 그를 음악감독으로 앉혔다.하지만 틸레만은 자신의 예술관을 강하게 밀어붙여 극장 운영진과 충돌했다. 예산 증액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는 2004년 음악감독 계약을 끝냈다. 같은 해부터 2011년까진 뮌헨 필하모닉 수석지휘자를 맡았다.
여차하면 까탈스러운 지휘자란 이미지가 크게 각인될 상황, 그는 독일 작센 지방의 악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만나 새로운 드라마를 썼다. 독일 방송사 ZDF는 12월 31일이면 새해를 기념하는 ‘제야음악회’를 생중계한다. 무대의 주인공은 베를린 필하모닉인 때가 많았다. 틸레만은 지방 악단으로 2010년 생중계 자리를 꿰찼을 뿐 아니라 흥행에도 성공시켰다.
그는 2024년까지 수석지휘자로 활약하며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두터운 인연을 쌓았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도 그간 없던 음악감독 자리를 새로 만들어 2015년 그를 붙잡았다
틸레만의 지휘, ‘이것’에 집중해 들어라
독일 시청자와 음악계를 홀린 틸레만의 매력은 음악에 대한 뚝심에 있다. 풍부한 표현, 다채로운 음색을 강조하는 여느 지휘자와 달리 그는 곡의 구조에 집중한다. 곡 전체의 얼개를 완벽히 짜 하나의 화폭으로 직조한다. 비논리와 의아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덕분에 그가 들려주는 연주에선 서로 다른 악기가 마치 하나로 합쳐진 듯한 인상을 풍긴다. 단원들의 연주가 격해질 때면 틸레만은 몸을 뒤로 빼 기세를 누그러뜨린다. 절정에서 터뜨릴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낭비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논리적 완결성을 강조하는 만큼 틸레만은 자신이 정한 음악 기준을 놓고 쉽게 타협하지 않는다. 협연자, 성악가와 합을 맞출 땐 악단 악기의 일부로 녹아들 것을 강조하는 쪽에 가깝다. 협연자가 없는 이번 내한 공연이야말로 그의 음악에 100% 몰입할 기회다. 물론 완결성에 대한 그의 집요함을 두고선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2015년 상임지휘자를 정하는 과정에서 그를 추천하는 단원들과 안드리스 넬손스를 추천하는 단원들 간 의견 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자 새로운 선택지로 키릴 페트렌코를 택한 일화가 유명하다.
정확한 음색, 섬세한 프레이징, 강렬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아우라를 지닌 틸레만의 해석은 오늘날 푸르트벵글러나 카라얀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그만의 현대성을 이뤄낸 성과로 평가받는다. 내한 무대에서 그는 빈 필하모닉과 호흡을 맞춰 슈만과 브람스, 브루크너의 독일적 세계를 펼쳐 보인다. 1871년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독일 통일 전까지 오스트리아의 독일어 화자들은 스스로를 독일인으로 여겼으며, 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빈은 독일어권의 문화적 수도 역할을 했다. 티켓 예매는 예술의전당 유료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선예매가 오는 26일, 일반 예매는 27일부터 가능하다.
이주현 기자/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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