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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과 브람스의 엇갈린 사랑…빈 필이 선사할 클래식 러브레터

입력 2025-08-21 17:23   수정 2025-08-22 02:02

“나는 생각했다. 미네르바처럼 완벽하게 무장한 누군가가, 제우스의 머리에서, 한 걸음씩 나오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고 말 것이라고.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요하네스 브람스다.”
- 1853·새음악신문(Neue Zeitschrift fur Musik)

작곡가이자 음악평론가로 독일 음악계의 중심에 있던 로베르트 슈만이 스물세 살 어린 작곡가에게 바친 찬사다. 브람스가 슈만에게서 작곡 수업을 받은 적은 없지만, 이들은 음악사상 가장 인상적인 사제 관계로 꼽힌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들의 영원한 뮤즈 클라라 슈만이 있었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이 남긴 두 거장의 교향곡을 곧 한자리에서 만난다. 오는 11월 19일 ‘이 세대 가장 독일적인 지휘자’로 꼽히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이끄는 빈 필하모닉 내한 공연에서다. 프로그램은 슈만이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인 3번 ‘라인’과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인 4번 E단조다.
브람스가 다녀가고, 슈만의 고통이 시작됐다
1853년 갓 스물이 된 야심 있는 작곡가 브람스를 슈만에게 소개한 사람은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이었다. 그해 10월 1일 브람스는 뒤셀도르프에 있는 슈만의 집을 찾아갔고, 슈만과 클라라 부부는 브람스가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들은 뒤 이를 극찬하며 젊은 작곡가의 재능을 확신했다.

서로를 존경하고 격려하며 이상적으로 이어질 것 같던 두 작곡가의 교류는 다음 해인 1854년 갑자기 깨졌다. 슈만이 라인강에 몸을 던지면서다. 여러 해 동안 그를 괴롭힌 정신이상이 중증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클라라와의 행복한 결합 이후 크게 신경 쓰지 않던 정신이상이 슈만을 심각하게 위협하기 시작한 것은 1853년 브람스가 그의 집을 찾아와 머물렀다가 간 직후였다. 귀에 한 음이 길게 들리는 이명이 시작되더니 이내 머릿속에 음악이 들렸다. 슈만은 “천사가 내 귀에 음악을 불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가 바뀌면서 그의 상태는 악화됐다. 환상 속에 나오는 천사들이 순식간에 악마로 바뀌곤 했다. 슈만은 클라라에게 “내가 당신을 해칠지 몰라 걱정이야”라고 말했다. 2월 27일 그는 라인강 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내렸다. 지나가던 배의 선원들이 그를 발견하고 배로 끌어 올렸다. 슈만은 “정신병원에 나를 가두어 주오”라고 말했다. 그는 본 근교의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3년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클라라의 면회가 허용됐다. 오랜만에 아내를 만난 슈만은 불분명한 발음으로 “나는 알아”라고 웅얼거렸다. 이틀 뒤, 그는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두 사람의 영원한 뮤즈, 클라라
슈만이 입원한 병원은 부인 클라라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 대신 슈만을 면회하고 두 사람 사이에 소식을 알려준 사람은 브람스였다. 이 과정에서 클라라를 향한 애틋한 감정이 연정으로 발전한 걸까. 슈만의 입원 2년 뒤인 1855년,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클라라, 사랑하는 클라라,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 속에서 나는 점점 더 행복하고 평화로워집니다. 매번 당신이 더 그리워지지만, 거의 기쁨으로 당신을 갈망합니다.” 문맥만으로는 불붙는 사랑에 붙들린 연인의 편지와 구분할 수 없다.

1856년 슈만은 세상을 떠났다. 브람스는 23세의 혈기 왕성한 나이, 8명의 자녀를 둔 클라라는 37세였다. 두 사람의 교류는 1896년 클라라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편지로, 지인의 집에서 열리는 소규모 콘서트 참석으로. 브람스는 중요한 곡을 쓸 때마다 클라라에게 의견을 구했다.

연정이라고 불릴 만한 열정은 브람스의 일방적인 것이었을까. 클라라가 1858년 브람스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다. “나의 요하네스, 또 다른 편지를 기다립니다. 당신처럼 갈망을 달콤하게 느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갈망은 나에게 고통만을 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으로 내 마음을 채웁니다. 안녕! 당신의 클라라를 좋게 생각해 주세요.” 평생 독신이었던 브람스는 클라라가 죽은 뒤 1년도 안 돼 클라라를 따라갔다.
두 천재, 영혼의 불꽃이 타오르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틸레만 지휘 빈 필이 첫 곡으로 연주할 슈만의 교향곡 3번 라인은 그의 교향곡 중에서 브람스의 영향이 가장 짙게 드러나는 곡으로 꼽힌다. 브람스의 교향곡 3번 시작부에 나타나는 ‘F-A-F’ 동기는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를 나타내는 요아힘의 ‘F-A-E’(Frei aber einsam) 동기를 변형한 것으로 ‘자유롭게 그러나 기쁘게(froh)’를 뜻한다.

휘몰아치는 강물처럼 장중한 두 작곡가의 3번 교향곡의 시작 부분에도 비슷함이 느껴진다. 슈만은 뒤셀도르프시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1850년에 교향곡 3번을 작곡했다. 당시 클라라는 뒤셀도르프에서 가까운 라인강변 쾰른 대성당에 대한 감상을 일기에 썼다. 브람스는 라인강변의 비스바덴에서 3번 교향곡을 작곡했다. 이 교향곡 1악장에는 바그너 ‘탄호이저’에 나오는 ‘시렌의 합창’과 비슷한 부분이 나온다. 시렌(사이렌)은 물의 요정이며, 브람스는 바그너가 쓴 탄호이저 손 원고를 사들여 보관하기도 했다.

브람스가 교향곡 3번을 쓰고 2년 뒤 1885년 작곡한 교향곡 4번은 3번에 비해 만년의 고독함이 느껴진다. 이 작품은 브람스 교향곡 중 유일하게 단조로 쓰였으며, 많은 평자가 이 곡에서 “부인할 수 없는 비극적 성격이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후 음악적 유언이라고 할 수 있는 ‘네 개의 엄숙한 노래’(1896)에서 교향곡 4번의 시작 음형(B-G-E-C)을 인용하며 ‘오 죽음이여! 오 죽음이여!’라는 가사를 붙였다.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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