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은 삶이 곧 실험이다. 곽덕준(사진)의 예술이 바로 그렇다. 스스로 “한국에서도 이질적인 존재, 일본에서도 이질적인 존재, 이 두 가지가 뒤섞인 상태에서 태어난 세계관이 내 작업의 근원”이라고 밝힌 그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중간자’ 정체성을 한·일 양국의 실험미술 교두보 역할로 승화했다.1937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곽덕준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일본 국적을 잃었다. 영원한 이방인인 그를 위로한 건 예술이었다. 일본화를 전공한 그는 20대 초반 폐결핵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긴 후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예술로 풀어냈다. 1970년대 들어 평면 작업에서 벗어나 개념적인 실험미술로 보폭을 확장하면서 두각을 드러냈다. 1970년 제작한 ‘계량기’가 당시 일본을 방문한 구겐하임 미술관 큐레이터에게 공개적으로 찬사를 받았다. 한국 작가로는 가장 이른 시기에 개념미술 작업으로 한·일 양국에서 주목받았다.
곽덕준을 대표하는 작품은 ‘대통령과 곽’이다. 미국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역대 미국 대통령의 얼굴 절반을 자신의 것과 결합했다. 한·일 현대미술 교류의 중추가 된 그의 여정은 지난달 별세하며 막을 내렸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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