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꽤 많은 질병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으로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제1형 당뇨병이 이에 해당하며 고혈압의 경우에도 염색체 자체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지라도 가족 중 고혈압 환자가 있으면 발병 확률이 높아진다.
암 역시 유전적 영향을 받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실제로 미국의 유명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유방암과 난소암 가족력이 있어 유전자 검사를 받았고 발병 위험이 높다는 결과에 따라 예방 차원에서 유방과 난소를 절제했다. 췌장암으로 사망한 스티브 잡스 또한 유전자 검사에서 DNA 돌연변이가 확인된 바 있다. 이처럼 최근에는 태아나 신생아 단계에서 유전자 이상을 조기에 진단하기 위한 다양한 검사법들이 연구되고 있다.
그렇다면 치아 건강 역시 유전될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치아의 구조, 강도, 색상, 형태, 크기뿐 아니라 상악과 하악의 형태와 크기도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아래턱이 돌출된 경우 자녀도 같은 경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으며 턱이 작아 치아 배열이 어긋나는 경우 역시 가족력과 관련이 깊다.
대표적인 치과 질환인 치아우식증(충치), 치주염(풍치), 부정교합 역시 유전적 요인을 일부 갖고 있다. 물론 환경적 요인과 평소 관리 습관이 주된 원인이지만 가족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치아우식증은 주로 식습관과 양치 습관이 원인이지만 선천적인 ‘광화’(치아가 단단해지는 과정) 상태도 중요하다. 부모에게서 단단하지 못한 치아를 물려받으면 충치 발생 위험이 더 높아진다. 특히 치아가 얼룩덜룩하고 유약한 ‘법랑질 형성 이상증’은 유전적 원인이 크며 이런 경우 정기적인 검사와 식이 조절이 필요하다. 심한 경우 단단한 재료로 미리 치아를 덮어 충치를 예방해야 한다.
잇몸병도 식습관, 양치와 관련 있지만 치아우식증보다 유전적 영향이 더 크다. 잇몸뼈가 얇은 경우 잇몸병 발생 가능성이 높고 이는 안모 유전과도 관련이 있다. 부모가 이른 시기에 잇몸병으로 인해 치아를 상실했거나 틀니, 임플란트 치료를 받았다면 자녀도 더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부정교합은 손가락 빨기, 턱 괴기, 구호흡, 손톱 물어뜯기 등의 습관과 방치된 충치 및 결손치와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생기기도 하지만 유전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치아가 하나 더 많은 ‘과잉치’는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0% 이상이 유전적 원인으로 밝혀졌다. 부모 중 덧니, 주걱턱, 무턱, 과잉치 경험이 있다면 자녀의 부정교합 발생 가능성도 높다. 이런 경우에는 영구치열이 완성되는 12~13세 전에 치과 검진을 받아 턱뼈 성장과 치열 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좋다.
주변보다 열심히 치아를 관리했음에도 유독 내 치아만 나쁘다고 느끼는 경우 부모님의 치아 상태를 살펴보면 해답이 나올 수 있다. 가족력이 있다면 충치나 잇몸 치료, 임플란트 경험이 더 많을 수 있다.
가족 중 치아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정기적인 예방치료가 필수이며 자녀가 있다면 유치 시기부터 세심한 관리로 질환을 예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현종 서울탑치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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