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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진짜 결별'의 조건

입력 2025-08-22 17:13   수정 2025-08-23 00:15

“누군가를 잊으려 애쓰다 보면, 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있다’와 ‘없다’는 공생한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

황경신 작가의 에세이에서 읽은 이 문장을 보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연애를 완전히 끝낸 사람은 상대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타인과의 대화에서도, 혼자만의 생각 속에서도 흔적은 자연스레 사라진다. 반대로 내적 결별을 끝내지 못한 사람은 말끝마다 “그 사람은 이제 나랑 상관없어” “다 잊었어”라는 말을 꺼낸다. 부재를 증명하려는 몸짓이 오히려 존재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영화 ‘500일의 썸머’에서 헤어진 썸머와의 기억 속에 갇혀 있는 주인공 톰도 그렇다. “썸머를 잊고 싶어”라는 그의 말은 이별이 아직 진행형이라는 증거다.

연애의 불문율은 정치에도 적용된다. 6월 대선에서 패배하고 소수 야당으로 전락한 국민의힘에도 ‘결별’ 논란이 한창이다. 당원들의 축제여야 할 전당대회는 ‘윤석열 대회’가 된 지 오래다. 반탄(탄핵 반대파) 후보들은 “윤석열은 이미 탈당한 외부인”이라며 지나간 일이라고 주장하고, 찬탄(탄핵 찬성파) 후보들은 “윤석열을 끊어내야 한다”는 말만 반복한다. 도돌이표 같은 공방은 외부에서 보기엔 그저 ‘잊지 못한 자’들의 의미 없는 투닥거리일 뿐이다.

이런 상황을 벗어날 기회는 분명 여러 차례 있었다. 탄핵 이후 취임한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윤석열과의 절연’을 위한 개혁안을 내놨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송언석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출범한 안철수·윤희숙 혁신위원회도 쇄신안을 제시했다. 다소 과격한 부분이 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당 차원의 사과와 반성을 기록으로 남기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를 과거의 일로 정리하자는 취지였다. 국민의힘 의원 전원이 국민 앞에 큰절이라도 하며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그런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안 전 위원장은 취임 며칠 만에 혁신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물러났고, 윤 위원장도 겸임 중이던 여의도연구원장직을 최근 던졌다. 윤 위원장이 최소한의 조건으로 제시한 1호 혁신안(당헌·당규에 당 차원의 반성 문구를 새기자는 것)도 물거품이 됐다. 단 하나의 혁신안도 실현하지 못한 채 혁신위는 사실상 해산 수순을 밟게 됐다.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듯, 존재도 부재를 증명한다. 실패는 어쩌면 예정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혁신위 출범 직후 한 중진 의원은 “아무것도 못 하고 끝날 것”이라는 냉소적 평가를 내놨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혁신이 되는 당은 ‘혁신위원회’ 같은 걸 만들지 않아요. 그 자체가 혁신을 못 하는 당이라는 증거일 뿐이지.” 그도 그럴 것이 국민의힘은 위기 때마다 혁신위를 띄웠다. ‘최재형 혁신위’, ‘인요한 혁신위’에 이어 이번 혁신위까지 고작 3년간 몇 차례나 조직을 만들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자기 위안용 혁신위의 존재는 오히려 혁신의 부재만 또렷하게 남겼다.

미뤄진 혁신의 방향키는 결국 곧 선출될 새 지도부의 손에 쥐어졌다. 새로 취임하는 당 대표는 적어도 “윤석열은 우리 당을 나갔으니 모든 게 끝났다”는 철 지난 변명을 지리멸렬하게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역사적으로도 말뿐인 절연은 독이다. 일본 민주당은 2009년 정권을 잡았지만, 정권 교체의 주역인 오자와 이치로의 정치자금 스캔들이 터지며 지지율이 추락했다. 지도부는 “오자와와 결별하겠다”는 약속을 반복했지만, 실제로는 선거 조직과 자금 때문에 그를 끝내 버리지 못했다. 결국 민주당은 개혁 이미지를 잃고 내분에 빠진 채 2012년 정권을 자민당에 다시 내줬다. 입으로는 절연을 외쳤으나 달라지지 않은 행동이 발목을 잡았다.

연애에서 지나간 사람을 잊는 법은 하나다. 새 사람과 다른 이야기로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것이다. ‘500일의 썸머’의 끝자락, 톰은 우연히 ‘어텀’(가을)이라는 여자를 만나 ‘썸머’ 이후의 챕터를 시작한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계엄이라는 역사적 과오가 일어나기까지 당이 잘못한 부분은 국민 앞에 확실히 사과하고, 앞으로의 대안과 비전을 제시해야 새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 옛 애인을 잊었다는 친구의 술자리 타령도 몇 번 듣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8개월간 ‘윤석열 타령’만 귀가 닳도록 들어온 유권자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누군가를 잊었다는 증명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으로 해야 한다. 국민의힘의 ‘진짜 결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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