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횡단철도티켓을 손에 쥔 24세의 청년은 귀한 것을 잃어버릴까, 자신의 출전 번호와 이름을 티켓에 새겼다. 382번 손기정, 그는 예측했을까? 식민지 조선을 깜짝 놀라게 할 뉴스의 주인공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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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 나는 KOREA 손기정

공원 너머에는 푸른 나무에 둘러싸인 붉은벽돌 건축물이 고혹한 멋을 드리운다. 1, 2층에 걸쳐 커다란 창문이 수십 개. 개방감과 고풍스러운 느낌을 전한다. 건물의 원래 이름은 양정고등보통학교, 손기정 선수(1912~2002)가 다녔던 학교가 손기정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생각이 많아? 잔소리 말고 뛰어. 뛰면 잡념이 날아간다고.” 선생이 어깨를 툭 치며 달려나갈 것만 같다.

손기정기념관은 바닥에 트랙을 설치해 마라토너였던 선생을 조명한다. 달리기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이 바닥을 보면 뛰고 싶어지는데,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어린이도, 어른도 살짝 뛰어보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기념관은 손기정 선수가 이룬 업적을 여러 유물과 기록물로 조명하고 있다.

시베리아횡단철도티켓과 함께 선생이 대회 출전 시 착용했던 것과 같은 형태의 신발도 눈에 띈다. 당시 마라토너의 신발은 버선 같기도 하고, 덧신 같기도 하다. 1936년, 선생이 오늘날의 신발을 신고 달렸다면 영원히 깨지지 않을 신기록이 탄생했을지도!

손기정 선수는 1936년 열린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인이 받는 첫 번째 금메달이지만 일본국가대표로 출전한 것이 부끄러워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여러 일화 중에서도 베를린에서 선생의 애국에 대한 면모는 인상적이다.

아낀다는 핑계로 마라톤 연습 시에 일장기를 단 유니폼을 한 번도 입지 않은 것이다. 일본 임원들의 눈 밖에 날 일인데도 말이다. 양정고등보통학교 5학년 A반 손기정의 인생 첫 금메달, 시상대에 오른 손기정 선수는 묵묵한 슬픔에 사로잡혔다. 가슴에 선명한 일장기를 손으로 가린 채 고개를 묻었다.

시상식 이후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선생은 항상 이렇게 답했다. ‘나는 한국인이다’, 사인을 요청하는 이들에게는 ‘KOREA 손기정’이라고 적어주었다. 오는 12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는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두발로 세계를 제패하다> 특별전이 열린다.
개인의 부귀와 영달을 바라는 성공이 아닌, 나의 승리가 나라의 승리임을 알고 숨이 터질 듯한 극한의 시간을 버틴 사람. 나는 무엇을 바라며 이렇게 달리고 있는지 손기정기념관에서 잠시 멈추는 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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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때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거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생각될 때 손기정 선생을 기념하는 이 공간들을 찾아보세요. 조국을 잃은 민족에게 불굴의 의지로 희망을 건넨 한 사람의 생애를 마주하고, 고즈넉한 사색과 낭만이 깃든 손기정도서관에서 쉬다 보면, 선생처럼 힘껏 달리고 싶어질 거예요.
가는법
서울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5번 출구·공항철도 서울역 15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15분
:: 여기도 가보세요

손기정도서관 _ 기념관 바로 옆에 자리한 사랑스러운 도서관이다. 의자와 책상은 똑같은 모양 하나 없이 책장 뒤에, 사이에 자유롭게 놓여있다. 오늘은 앤틱 의자에 앉아볼까? 구석진 곳의 캠핑용 의자도 좋겠다. 공부하러 오는 도서관보다 쉼과 낭만을 찾아 오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시즌별 문화강좌도 열린다.

영덕물회막회 _ 서울역과 충정로역 사이, 청파로에 자리한 노포. 물회 ‘소’는 가격이 1만1000원인데 칼칼한 맛에 뭉텅 뭉텅 썰어준 막회가 실하게 들어있다. 인근 직장인들이 사랑하는 맛집으로,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후 방문하면 대기시간 없이 입장할 수 있다.

드로우에스프레소바 _ 성요셉아파트 골목길 어귀, 항상 웃는 얼굴의 사장님이 반겨주는 아늑한 에스프레소바. 에스프레소에 크림과 코코아파우더를 올린 ‘피에노’는 커피의 진한 풍미와 달콤함이 어우러지고, 에스프레소를 셔벗으로 즐기는 ‘말차 그라니따’도 식후 디저트로 손색없다.
* '1시간 서울 여행' 영상을 한경트래블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상미 기자 vivi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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