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병만이 이혼소송, 파양 등으로 입방아에 올랐던 자신의 첫 결혼생활에 대해 솔직히 털어놨다.지난 25일 방송한 TV조선 '조선의 사랑꾼'에 출연한 김병만은 전처와의 결혼생활에 대해 "방송인이고 하니까 소극적 일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까지 대중이 이해해 줄까.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해야 사실로 믿어줄까. 카메라가 없다 그러면 굉장히 심한 상태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결혼 전) 저는 엄마와 살고 있었다. 2010년에 혼인신고 하자마자 그 사람이 엄마를 바로 내려보냈다"고 회상했다.
결혼 후 가장 힘들었던 점은 경제적인 문제였다. 김병만은 "모든 경제권을 그분이 요구해서 제 공인인증서, 주민등록증까지도 다 소유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아는 건 출연료 들어오는 통장이었다. 그 외의 통장은 볼 수 없었다. 비밀번호도 바뀌어 있더라. 은행에 가서 분실신고를 해서 비밀번호를 찾아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쓰는 체크카드가 한도 초과됐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전처는) 한도 2000만 원, 3000만 원짜리 카드를 갖고 다니며 쓰고 매달 현금을 뺐다. 왜 이렇게 현금을 뺐지 싶더라. 주변 사람들이 공인인증서를 왜 넘겼냐고 하는데, 안 넘기면 괴로웠다. 끊임없이 전화가 온다. 본인이 인증서를 가져갈 때까지 전화한다. '나 좀 놔둬' 이런 심정이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많이 탔다. 2019년까지 갈등의 연속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결국 집을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용히 말하지 않고 몇 가지를 챙겨서 나왔다. 연락을 안 하고 그 기간이 점점 길어졌다. 이혼 소송을 하면서 변호사가 한 말이 있다. 헛웃음을 치더라. 이것밖에 못 벌었냐, 다 어디 갔냐고 하더라"고 전했다.


김병만은 "2017년 척추가 부러졌을 때도 미국 병원에 있었다. 보통 아내라면 와야 하지 않나. 저는 이제 장애인이 되냐 마냐 할 땐데 안 왔다. 생명보험이 가입돼 있었다. 나 죽었으면 이 사람 돈 엄청나게 벌었을 거다. 이거는 사건 전문 다큐멘터리에 나와야 한다. 그런 상황인 거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는 이혼을 결심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개그맨 시험을 8번 만에 됐다. '달인' 캐릭터를 얻었다. 방송인들 기사 보면 이런 리스크 때문에 피해를 볼 수 있었다. 절벽을 타고 있는데 발을 헛디뎌서 다시 올라가야 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무탈하게 가려면 이런 구설이 없어야 하니까"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시 가난으로 돌아가는 게 제일 두려웠다. 우리 엄마를 다시 식당일 시키지 않겠다, 이런 마음으로 절실했다. 이혼을 포기하고 커리어를 지키면서 산 거다. 방송에서는 행복한 척한 거다"라고 덧붙였다.
김병만은 방송 활동 당시 겪었던 고충도 고백했다. 그는 "무대 위에 올라갔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다. 지난달 수입보다 적게 들어온 것 같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언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어린아이 분장을 하고 방송을 해야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이런 정신 상태에서 할 수 있었던 건 한정돼 있었다. 다큐, 정글, 오지 다니는 거. 우거진 정글이 너무 좋더라.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고, 정글이 제 피신처였다. 얼굴보다 풀샷이 많이 나온다"고 털어놨다.

김병만은 2011년 7살 연상의 비연예인 여성과 결혼했으나 2023년 이혼했다. 전처의 딸은 파양했다. 이후 제주도에서 새로운 삶을 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랜 시간 돌고 돌아 역경 끝에 만난 인연은 현은재 씨였다. 최근 혼인신고를 마치고, 현 씨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이도 호적에 올렸다.
김병만은 현 씨와의 인연에 대해 "2006년 처음 만나 교제했고 2007년 각자의 길을 갔다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람은 나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인연이다. 집사람이 아니라 집 같은 존재다. 내가 가장 편히 안길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아내"라며 진심을 전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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