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계적인 K뷰티 붐을 이끌고 있는 브랜드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가격이 저렴한 축에 속하고, 트렌디한 마케팅과 신제품 출시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이 성공방정식을 벗어난 K뷰티 브랜드가 있다. 국내 바이오 기업 퓨젠바이오가 만든 '세포랩'이다. 세포랩은 일반 K뷰티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우선 바이오제닉 에센스 155mL짜리 한 병이 13만원에 달하는 고가 브랜드다. 지금껏 별다른 마케팅도 하지 않았고, 패키징도 라벨이 없는 투명한 병에 황금색 에센스를 넣은 게 전부다.
그런데도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GS샵, 현대홈쇼핑 등에서 인기 브랜드를 제치고 에센스 부문 판매 1위에 올랐다. 약 2년 반 동안 누적 판매액은 1500억원에 달한다. 김윤수 퓨젠바이오 대표(58)는 최근 기자와 만나 "남들이 다 하는 방정식을 따르지 않은 게 세포랩의 경쟁력"이라며 "한국을 대표하는 K에센스로 도약해 중화권 소비자를 사로잡을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의 이력은 브랜드만큼이나 독특하다. 1990년대 초 삼성전자 반도체 팀장을 거쳐 1998년 정보기술(IT)업체 네오엠텔(현 이트론)을 설립했다. 2013년 네오엠텔을 매각한 후 스타트업 투자자로 변신했다가, 2016년 자신이 투자했던 퓨젠바이오의 경영이 어려워지자 최고경영자(CEO)로 나섰다.
퓨젠바이오의 애초 목표는 화장품이 아니었다. 2010년 발견한 희귀 미생물 균주인 '세리포리아 락세라타'를 기반으로 당뇨 관련 건강기능식품과 신약을 개발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절차 등으로 개발 과정이 늦춰졌다. 그 때 김 대표는 "연습게임으로 화장품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임상 피험자 상당수가 인슐린 저항성 수치뿐 아니라 피부결 개선 효과를 봤다는 것에서 착안했다.

김 대표가 세포랩을 '뷰티업계의 위고비'라고 부르는 이유다. 당뇨약 개발 과정에서 우연히 탄생한 비만약 위고비처럼, 뜻하지 않게 화장품 사업에서 빛을 봤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일반 에센스는 원료 함량이 얼마 되지 않지만, 세포랩은 균주가 얼마나 좋은지 보여주기 위해 함량을 92%까지 올렸다"며 "균주 함량이 높은 탓에 퀴퀴한 냄새가 나도 천연화장품이란 것을 강조하기 위해 별다른 첨가제를 넣지 않는다"고 했다.
초기 마케팅 전략도 달랐다. 유명 스타를 모델로 쓰는 대신 전국 골프장과 호텔에 제품을 납품했다.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세포랩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전략은 적중했다. 40~50대 중장년 여성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홈쇼핑 판매가 늘었다. 지난 5월 중순 GS홈쇼핑에서 진행한 이벤트에선 하루 만에 22억원치를 판매했다. 김 대표는 "국내 뷰티 제조자개발생산(ODM)업체에 맡겨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와 달리, 차별화된 원료와 고농도 배합이 세포랩의 경쟁력"이라고 했다.

세포랩은 최근 80대 여배우 김혜자를 브랜드 모델로 첫 기용했다. 이 역시 젊은 배우나 아이돌을 내세우는 일반 브랜드들과는 다르다. 김 대표는 "모든 연령대가 쓸 수 있는 화장품이란 세포랩의 브랜드 철학을 제일 잘 전달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했다. 최근 유통채널도 적극 넓히고 있다. 홈쇼핑을 넘어 무신사, 컬리 등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했고, 면세점, 올리브영, 피부과 병·의원 등 오프라인 진출도 준비 중이다.
해외에서도 점차 반응이 오고 있다. 특히 황금색을 선호하는 중화권에서 향이 독특하다는 뜻의 '취수'(臭水)로 불리고 있다. 지난해 홍콩에서 열린 K뷰티 박람회에선 현지 인플루언서가 라이브 방송에서 30분 만에 세포랩 에센스를 3000만원어치 판매하기도 했다. 그 계기로 홍콩에 이어 싱가포르·대만·중국 등 중화권 진출도 준비 중이다.
김 대표는 "다음달부터는 아마존을 통해 미국에도 진출한다"며 "해외에서도 '누구나 쓸 수 있는 화장품'이라는 포인트를 내세워 K뷰티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이라고 했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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