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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훈 칼럼] '저력의 한국기업'도 감당못할 노란봉투법

입력 2025-08-26 17:27   수정 2025-08-27 00:19

처음 봤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지난 24일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하는 순간이었다. 차갑고 딱딱하게만 비치던 투사의 환호는 기업들의 탄식과 극명하게 엇갈렸다.

노란봉투법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돼 온 이 법의 정식 명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법률안’이다. 일반인에겐 생소하고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웬만한 이해관계를 갖지 않고서는 제대로 알기 어렵다. 노란봉투법이라는 약칭은 2009년 쌍용자동차 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해 법원이 47억원의 배상을 결정하자 시민단체 등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모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별로 자랑스럽지도 않은 일에 따스한 이미지가 덧씌워진 것은 프레임 구축에 능한 좌파들의 기교 덕이다.

이번에 개정된 3조는 노조 불법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대폭 제한하고 있다. 기업이 수백, 수천억원의 손실을 입었더라도 노조나 조합원들의 경제상태 등을 따져 당사자들이 감내할 만한 수준으로 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불법파업에 대한 기업 차원의 억지력은 간단히 해제됐다. 하지만 기업들에 더 심각한 문제는 ‘사용자성 확대’를 담은 2조 개정안이다. 원래 노란봉투법은 3조를 중심으로 논의되다가 뒤늦게 2조 개정안이 얹힌 구조다. 2010년 현대중공업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촉발됐다.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 노조 활동에 개입한 사건(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에서 대법원은 “근로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는 사용자로 본다”고 판시했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았더라도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면 사용자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2조 개정안은 이 법리를 그대로 끌고 왔다.

향후 파장은 선뜻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적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하청업체 근로자가 원청을 상대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거의 유례가 없는 법적 보장이다. 사내 하청이든, 사외 하청이든 상관없다. 원청을 사용자로 볼 수 있다는 규정은 하청기업 고유의 자치 시스템을 간단히 형해화한다. 실적 부진이나 처우 개선 지연을 남 탓으로 돌려버리는 인지 부조화를 구조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3차 하청은 2차, 2차 하청은 1차, 1차 하청 노조는 원청을 상대로 각각 도미노식 교섭을 요구하는,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조장한다.

정부는 이런 공황 상태를 막기 위해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이 경우에도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의 이해 충돌은 불가피하다. 자사를 상대로 더 나은 근로조건을 얻어내겠다는 하청 노조를 원청 노조가 곱게 볼 리 없다. 같은 사업장이라도 평소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겸상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장 위화감은 고질적이고 심각하다. 전자 자동차 조선산업의 거대 노조가 자신들의 파이를 빼앗길 수도 있는 노란봉투법에 침묵을 지킨 것 역시 어떤 경우에도 기득권을 양보하지 않겠다는 자신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문제를 낳는다. 개정안 2조는 ‘주주충실 의무’ ‘집중투표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보다 기업경영에 훨씬 더 해악적이다. 우리 산업 현장은 생산성이나 실적에 관계없이 도처에서 자기 몫을 고집하는 아우성으로 파행을 거듭할 것이다. 양대 노총은 교섭권 지원을 앞세워 노조가 없는 사업장을 부추기며 세몰이에 나설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대응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이런 아수라장을 감당할 정도는 못 된다. 위기 때마다 작동해온 ‘한국 기업의 저력을 믿는다’는 슬로건도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상황이다. 기업도 생로병사의 질곡을 벗어나지 못하는 유기체여서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스트레스는 견딜 수가 없다. 미국발 관세쇼크는 모든 나라가 맞닥뜨린 공통의 위기다. 팬데믹 위기도 그랬다. 하지만 노란봉투법은 한국 기업에만 채워진 족쇄다. 가뜩이나 많은 기업이 중국 제조업의 거센 돌진과 경기 침체 장기화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노동계의 20년 숙원이 해결됐다는 환호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창업이, 투자가 사라지면 고용, 노조, 투쟁도 자동 소멸된다. 노란봉투법이 아니라 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올 검은봉투법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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