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차 세계대전 때는 하루에 한 척씩 선박을 건조한 나라였다. 미국이 자체적으로 다시 선박을 건조하는 날이 올 것이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조선업의 쇠락을 안타까워하며 한국과의 협력을 통한 조선업 부활 의지를 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한국의 배를 구매하고 미국 노동자를 활용해 함께 선박을 건조하고, 다시 조선업에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마스가’(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전략의 효용이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 입증된 순간이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20세기 중반까지 세계 조선산업의 절대강자였다. 미국 남부 앨라배마의 모빌은 미국 조선업의 성쇠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밴드 오브 브러더스’와 함께 스티븐 스필버그의 2차 세계대전 시리즈 쌍벽으로 꼽히는 ‘더 퍼시픽’ 주인공의 고향, 모빌은 조선업과 부침을 함께 해왔다. 심장병으로 입영이 늦어진 주인공 유진 슬레지(조지프 마젤로 분)는 먼저 군에 입대해 남태평양 과달카날 전투에 투입된 친구에게 편지를 전한다. “이제 고향에 와도 못 알아볼 정도일 거야. 하루에만 수천 명의 노동자가 조선소에 투입되고 있어.”
미국 남부의 주요 목화 수출항이던 모빌은 이후 빠르게 군수항으로 변모한다. 1942년 6월 일본과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남태평양 해상권을 장악한 미국은 전함 건조 총력전에 나선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회담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시는 ‘국가방위부’가 아니라 ‘국가전쟁부’로 명명된 총동원의 시기였다. 모빌의 ADDSCO(앨라배마 드라이독&십빌딩 컴퍼니)는 최대 3만 명 이상을 고용하고 매일 리버티선(표준 화물선)을 쏟아내며 적국을 압도했다. 20세기 중반까지 미국 조선소는 400여 곳에 달했고 모빌은 남부 최대 군수산업도시로 성장했다. 진주만 공습 전 609만t(총톤수)으로 세계 2위였던 일본의 선복량은 1945년 150만t으로 쪼그라들었고, 미국은 1144만t으로 단숨에 1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ADDSCO를 비롯한 모빌의 대형 조선소는 전후 상업용 수요 감소와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경쟁자의 대두로 1970~1980년대 대거 폐쇄됐다. 그나마 남아 있던 모빌의 조선소는 글로벌 방위산업체에 팔렸고, 현재는 과거 영화의 흔적만 남았다. 현재 미국 조선 역량은 연간 단 5척의 대형 상업 선박을 건조하는 수준으로 떨어졌고 상선 점유율은 1% 미만이다. 내항선은 반드시 미국에서 건조토록 한 ‘존스법’도 경쟁력 하락을 가속화했다. 인건비는 오르고 혁신이 사라진 미국의 조선업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사이 중국의 조선 능력은 미국의 232배 규모로 커졌다. 중국은 연 39척의 구축함을 생산하고 있지만 미국은 7척에 그친다.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의 TSMC, 인공지능(AI) 칩 분야의 엔비디아를 통해 중국 견제가 가능하겠지만 조선업은 한국 외에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는 일본에도 조선업 재건 참여를 촉구했으나 일본 조선사들은 13%의 세계시장 점유율로는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첫머리부터 한국과의 협력을 통한 조선업 부활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마스가 전략’은 상대방이 거부할 수 없는 최상의 대안(조선업 부활)을 전체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한 협상 전략의 전형을 보여줬다. 조선 이외 분야에서도 ‘제2의 마스가’를 발굴해낸다면 전례 없는 통상 파도 속에서 신항로를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