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8월 29일 08:5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미국 고스트로보틱스는 한국 시장을 핵심 자금 조달처로 삼았다. 2022년 대통령실에 로봇개를 공급한 뒤 자신감이 한껏 치솟은 상태였다. 처음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아직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고스트로보틱스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따랐다. 비교 대상이었던 보스톤다이나믹스와 빚고 있는 특허 분쟁도 투자를 망설이게 하는 요소로 꼽혔다.
의구심을 뚫고 공격적인 ‘베팅’에 나선 곳은 LIG넥스원이었다. 3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투입해 고스트로보틱스 지분 60%를 사들였다. 로봇을 활용한 미래전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갈길이 험난하다. 고스트로보틱스는 매출 10%를 보스톤다이나믹스에 로열티로 내게 됐다. 연간 수백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LIG넥스원 실적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 투자자 물색한 고스트로보틱스
2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고스트로보틱스의 국내 시장 진출은 2022년 초 본격화했다. 故지렌 파리크 고스트로보틱스 전 대표는 2022년 2월 KOTRA 초청으로 방한했다. 고스트로보틱스는 같은해 4월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 설립에 참여했다. 고스트로보틱스는 국내 총판을 이 회사에 맡겼다.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고액 후원자인 서성빈 전 드론돔 회장을 통해 같은해 9월 대통령실에 로봇개를 공급하는 데도 성공했다.국내에 널리 이름을 알린 고스트로보틱스 측은 투자자들을 물색했다. 당시 2022년 4월 돌연 사망한 故파리크 대표의 지분과 기타 초기 투자자들의 지분을 매각하는 구조의 거래를 제안했다. 신설되는 지주사에 총 1억5000만달러(2094억원)을 투입하는 구조였다.
기관투자가들은 투자에 참여하길 꺼렸다. 고스트로보틱스가 아직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성장성에 확신이 서야 했다. 당시 고스트로보틱스의 로봇개는 조종사의 관제를 통해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인력 대체효과가 적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보스톤다이내믹스와의 특허 소송도 걸림돌로 꼽혔다. 로봇의 사족 보행 기술은 보스톤다이내믹스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분쟁에 휘말린 상태였다. 당시 특허 소송만 총 7개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LIG넥스원은 과감한 투자에 나섰다. 앞서 국내에서 매각을 타진한 이들을 통해 인수에 나서는 대신 미국 IB 훌리언 로키를 접촉하는 방식을 통했다. 2023년 12월 LIG넥스원은 미국 로봇기업 고스트로보틱스 지분 60%를 332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LIG넥스원은 한투PE에서 매입가의 40%에 해당하는 1260억원을 조달했다. 거래는 작년 7월 잔금 납입과 함께 마무리됐다.
LIG넥스원은 故파리크 전 대표와 기타 투자자, 기존 임직원들의 지분을 사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40% 지분은 여전히 기존 경영진이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경영은 당분간 보장해주기로 했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당장의 실적보다는 로봇 기술력 확보와 시너지 창출 차원에서 고스트로보틱스를 인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고스트로보틱스, 매출 10% 로열티로
고스트로보틱스의 실적은 LIG넥스원의 기대와 달리 부진했다. 고스트로보틱스의 작년 8~12월 매출은 133억원, 순손실은 121억원으로 집계됐다. 고스트로보틱스는 작년 말 기준 자산(318억9200만원)보다 부채(479억6900만원)가 많은 자본잠식 상태에 있다.보스톤다이내믹스와 빚은 특허 분쟁도 결국 고스트로보틱스의 발목을 잡았다. 고스트로보틱스는 작년 말 보스톤다이내믹스와 특허침해소송 종결에 합의하면서 2035년까지 사족로봇제품 매출 10%를 로열티로 지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기업이 영업이익으로 남길 수 있는 금액과 맞먹는 수준이다.
LIG넥스원 입장에서는 ‘본진’인 한국 시장 영업도 당장은 막혀있다. 한국 총판권은 내년까지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가 갖고 있어서다. 케이알엠은 작년 말 ‘국방 서비스로봇 실증 시범사업’ 일환으로 육군에 사족보행로봇을 공급하기도 했다.
LIG넥스원는 한국 총판인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와 선을 긋고 있다. LIG넥스원의 인수 조건에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 지분 정리 및 관계 축소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스트로보틱스는 2022년 4월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 설립에 참여해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인수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실제 작년께 고스트로보틱스는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는 작년 말 감사보고서에서 고스트로보틱스가 여전히 13.1%의 지분을 갖고 있다고 공시했다. 이미 정리했는데도 이 같이 공시했다면 자칫 허위 공시가 될 수 있는 사항이다. 지분 관계가 없어졌다는 건 케이알엠과 고스트로보틱스의 협력 관계가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사실인만큼 투자자들에게 똑바로 알려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양측은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다. 고스트로보틱스테크놀로지 측 관계자는 “지분 정리와 관련해 고스트로보틱스로부터 통보된 것이 없어 그대로 기재했다”고 설명했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지분관계는 정리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기재된 것은) 단순한 행정적 사유일 수 있다”고 했다.
최한종/차준호 기자 onebe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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