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채식주의자에 동물을 끔찍하게 사랑했고 담배는 물론 음주도 혐오했다. 자원입대해 전방에서 복무하며 훈장까지 받았으니 병역 확실! 아직 미혼이니 가족 문제 깔끔! 여자 문제도 없고 재산도 없으니 부동산, 주식, 뇌물, 탈탈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온다. 훗날 한반도에 수재 의연금까지 보내줄 정도로 넉넉한 처신. 어떤 야당 공격수가 등판해도 청문회는 무사통과할 이 사람, 독일인들은 선거를 통해 그를 총리로 만들었다. 그리고 망했다. 그가 히틀러였다. 이걸 보면 정치인의 과거도 중요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비전이 더 중요하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국회에서 ‘우리의 국시는 반공이 아닌 통일이어야 한다’고 발언한 분이 계셨다. ‘국민이 지지하는 국가 이념이나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국시, 요즘 젊은이라면 ‘국수’의 경상도 사투리로 이해할 낡은 그 단어, 그게 반공을 넘어 통일이어야 한다는 발언만으로 현역 의원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처해졌다. 1986년 10월 14일, 유성환 의원 사건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에 ‘반대’하기 위해 존재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섭섭하다. ‘무엇에 반대한다’는 것은 그걸 통해 뭔가를 이루는 방법이지 국가의 존재 이유로는 좀 어색하다. 하지만 반복된 반공 교육으로 그때는 모두가 빨강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에 푹 절어 있었다. 세월이 흐른 어느 여름, 젊은이들이 ‘빨갱이가 되자(Be the Reds)’라는 무시무시한 글귀가 쓰인 새빨간 셔츠에 반공 포스터에나 등장하던 ‘간첩 머리에 난다’는 그 뿔을 쓰고 거리로 나섰다. 펄쩍 뛰며 모조리 감옥에 처넣었을 일인데 어른들도 같은 걸 입고 화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긴 ‘레드 콤플렉스’의 포획에서 벗어난 건가? 하지만 공(共)은 조금씩 흐려졌지만 ‘반(反)’만은 화상의 흉터처럼 남았다.
다음은 군부독재 타도, 이 또한 ‘반대’를 통해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행동이다. 그 군부는 사라졌지만 이번에도 ‘반(反)’은 남았다. 두 종류의 반을 위해 온 젊음을 바친 그들에게 반의 기억이 굳어져 반 자체가 당시(黨是)라도 된 건가? 무수한 거부권과 탄핵이 그 증상이다. 정치적 지분을 확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적을 분명하게 지명하고 그들이 사탄과 동기동창이니 사탄이 사는 원래 동네로 추방하자는 선동을 반복하며 ‘우리’를 결집하는 거다. 히틀러가 쓴 그 방법이다.
공유된 공동체인 대한민국은 아직 미완성이어서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고, 또 만들어 가야 한다. 그걸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한다’는 비전이 경쟁해야 하는데 무의식 속에 짙게 남은 ‘탈탈 털고 저격하는 반’만이 양당의 당시가 돼버린 것 같아 슬프다. 하다못해 도널드 트럼프도 ‘MAGA’를 주장하고 정의와는 거리가 먼 전두환도 ‘정의’ 사회를 구현한다며 민주정의당을 창당했었다.
하지만 반공과 반독재에 경력을 바치며 반사체로 명성을 얻어온 분들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상대에 대한 반을 존재의 기반으로 삼을 셈인가? ‘인간이 아니니 악수도 안 한다?’고 했더니 발끈하며 ‘나도 안 한다?’ 이거 초등학생 싸움? 풀려난 어떤 분은 상대 당의 소멸, 최소한 절반화가 목표라고 말한다. 이건 복수극?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니체의 말이다. 악을 증오하고 싸우되 그 증오에 잠식되고 지배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7월 31일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을 초대해 밥 한 끼 하셨다. 최초다.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전두환, 부화뇌동한 노태우, 작금의 외환위기를 초래한 김영삼까지. 국민이 잘될 수 있다면 원수와 밥 한 끼가 뭔 대수! 이게 대인배다.
시민을 학살하고, 사과조차 안 하는 그와 마주하면 밥맛이 확 돌 것 같아서 초대했을까? 여전히 못마땅한 일본의 총리, 우리를 통째로 말아먹으려 드는 트럼프도 만나서 밥 먹는 판에 ‘먹은 놈 배신 못 한다’는 지혜에 따라 일단 마주 앉아 밥 한 끼부터 하시는 게 어떨까? 아 참, 그 유성환 의원, 그분이 민주정의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이긴 곳이 ‘대구 중서구’였다. 그래, 최소한 그때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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