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가 본격화되면서 한국 조선업이 양국 경제·안보 협력의 핵심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HD현대·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빅3’는 공동 건조, 유지·보수·정비(MRO), 기술이전과 인력 양성 등 전방위 협력에 착수하며 미국 조선업 재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HD현대는 서버러스캐피털, 한국산업은행과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 프로그램 조성에 합의, 기술자문사이자 앵커 투자자로서 프로젝트 전반을 이끈다. 삼성중공업은 미국 비거마린그룹과 MOU를 맺고 해군 지원함 MRO 사업에 참여한다.
한화는 현지 한화필리조선소에 50억 달러(약 7조원)를 투자해 현지 건조 확대에 나서며 건조 능력을 2035년까지 10배 끌어올릴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MASGA 프로젝트가 단순한 수출 계약이 아닌 기술과 자본, 공급망 주도권이 결합된 ‘전략적 산업 외교’라는 점에 주목한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MASGA는 미국 내 조선업 재건을 위한 산업 파트너십이자 한국 조선업의 글로벌 입지를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선업이 단순한 산업을 넘어 한·미 전략 동맹의 교두보로 떠오른 가운데 국내에서는 조선업을 누가 주도할 것인지에 대해 부처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있는 ‘조선해양플랜트과’의 해수부 이관 여부를 두고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 정면으로 대치하는 모습이다.
현재 조선산업을 관할하는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로 산하 ‘조선해양플랜트과’가 기술개발, 수출지원, 산업 전략 수립을 전담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7월 취임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출신 전재수 해수부 장관이 해수부 기능 강화를 주장하며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은 해수부가 맡아야 한다”고 공개 발언하면서 부처 간 갈등이 표면화됐다.


이에 대해 기업인 출신(전 두산에너빌리티 사장)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곧바로 “조선업과 해운업을 단순히 합치는 건 신중해야 한다”며 반박에 나섰다.
김 장관은 “조선은 해운 이슈보다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계, 소재, 디지털 등 제조업 기반의 복합 산업”이라며 “일본이 조선업과 해운업을 통합했다가 오히려 경쟁력을 잃은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장관은 김 장관이 “일본에서도 조선업과 해운이 합쳐진 뒤 조선업이 경쟁력을 잃었다”고 지적한 점에 대해 “선후관계가 뒤집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일본은 조선업이 망가질 때쯤 해양산업과 결합한 것으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던 것”이라고 전 장관은 덧붙였다.
전 장관은 최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부처 이기주의가 아니라 기회를 맞은 한국의 조선산업의 초격차 기술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이고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부처에서 하는 것이 맞다”며 산업부 소관인 조선 해양플랜트 산업 부분의 해수부 이관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양 부처의 갈등은 국정기획위원회가 조선해양플랜트과의 해수부 이관을 포함한 조직개편안을 준비한다고 알려지면서 고조됐다. 일각에선 해수부 이관이 ‘기정사실’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조직개편안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
MASGA 프로젝트의 ‘정치적 무게’를 고려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MASGA 프로젝트는 미국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공동 투자와 기술이전, 공급망 연계 등이 포함된 전략적 산업 협력 사업이다.
산업부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는 산업외교의 성격도 강한 만큼 주무 부처의 일관성이 핵심이다. 이 시점에서 부처를 변경할 경우 사업의 연속성이 훼손될 수 있고 외국 정부와 기업의 신뢰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MASGA는 관세 협상까지 지렛대 역할을 한 대형 프로젝트로 이 민감한 시점에 산업부에서 조선업을 떼어내는 건 외교적 신뢰 훼손으로 번질 수 있다”고 전했다.

조선업의 소관 부처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 조직 논쟁이 아닌 ‘산업 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선산업은 더 이상 단순한 선박 건조 산업이 아니다. AI, 자율운항, 디지털트윈, 친환경 연료 등 첨단기술이 융합된 미래 전략 산업이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조선 분야는 다양한 연관 기업들이 참여하는 복합 산업인 만큼 산업 생태계 조성이나 연구개발(R&D) 등 산업 육성 전략을 고려할 때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에 두는 것이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더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선업은 제조·엔지니어링 기반의 산업으로 철강·기계·에너지 등 전후방 산업과의 긴밀한 연계가 필수적이다. 기술개발, 인력양성, 국제협력·통상, 무역 등 다양한 정책 영역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으며 대부분 기능이 산업부에 집중돼 있다. “수천 개에 이르는 관련 업체에 대한 정책 지원의 효율성을 고려할 때 조선업은 산업부 소관이 보다 적절하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김 교수는 산업부와 해수부 장관의 일본 사례 비교와 관련, 한국 조선업과 구조가 다르다고 진단했다. 일본은 국토교통성에서 조선업과 해운업뿐만 아니라 철도, 자동차 분야 등 수송 관련 분야를 모두 관장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조선업을 바라보는 전략부터 다르다. 한국이 수출 중심 제조업 관점에서 산업부가 조선업을 총괄하는 반면, 일본은 국토교통성이 조선과 해운을 통합 관리한다. 일본은 ‘i?Shipping’ 전략을 통해 조선업 자체보다는 내수 기반 해운업과의 연계를 중심에 두고 있다.
일본은 글로벌 해운 수요에 대응하는 자국 선박 조달을 정책의 핵심으로 삼는 구조다. 이는 수출 제조업을 국가 성장축으로 삼는 한국과는 산업 정책적 환경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경쟁국인 중국도 조선업은 공업정보화부(MIIT), 해운업은 교통운수부(MOT)가 나눠 맡으며 제조업과 물류산업을 각각 특화해 관리하고 있다.
김 교수는 “조선업은 제조업, 해운업은 서비스업 기반으로 진흥과 규제의 정책 성격이 다르다. 일본은 내수 해운 수요를 중심으로 조선업을 운항 서비스 체계 안에 통합해 관리하지만 한국은 조선업 자체가 수출 주도형 제조산업으로서 국가 전략 산업의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로선 조선업의 수출 확대와 기술개발 지원 등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독립적 정책 지원이 필요하며 조선과 해운의 통합 관리는 내수 비중이 높아질 때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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