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닷컴 버블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던 시절. 투자자들이 외면한 대학생의 웹사이트 아이디어에 단 한 사람만 귀를 기울였다. 피터 틸이었다. 그는 50만 달러를 베팅했고 이 선택은 훗날 3400배의 수익률로 돌아왔다. 페이스북의 첫 외부 투자자, 그 이름이 전설이 된 순간이다.
이후 틸은 에어비앤비, 스포티파이, 스페이스X 등 시대를 바꾼 기업에 투자했다. 그의 개인 투자조직 ‘틸 캐피털’과 벤처펀드 ‘파운더스 펀드’는 틸의 철학을 구현하는 장치다.
파운더스 펀드의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지만 얻은 것은 140자(트위터)뿐이었다.” 세상을 바꿀 만한 기술보다는 위험 부담이 적은 인터넷 기업이나 소프트웨어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업계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틸은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가.” 그의 투자 지도는 그 답을 찾은 기업들로 채워져 있다. 페이팔, 팔란티어, 페이스북, 스페이스X, 에어비앤비, 스포티파이…. 그의 책 ‘제로투원’에서 강조했듯 독점적 위치에 선 기업만이 세상을 바꾸고 압도적 수익을 안겨준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틸이 찍은 기업은 곧 미래 산업의 좌표였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그의 포트폴리오에 귀를 기울이고 다음과 같이 묻는다. “피터 틸이 또다시 증명할까요.” 틸은 지금 어디에 돈을 걸고 있는가.
틸은 생명 연장과 헬스테크에도 꾸준히 눈을 돌린다. 2023년과 2024년에 잇따라 투자한 ‘린더스헬스(Lindus Health)’는 AI로 임상시험의 방식을 바꾸려는 기업이다. 기업 소개서도 안티 임상시험수탁기관(CRO). 틸은 2025년에는 AI 정밀의학으로 암 치료 방식을 변화시키려는 ‘아타라시스(Ataraxis)’에도 자금을 댔다. 공통점은 모두 AI를 통한 변화와 혁신이다.
비트코인에 가려져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이더리움(ETH)’에도 그의 베팅은 이어졌다. 8월 들어서만 이더리움 가격은 약 13.5% 급등했다. 큰 수익을 거둔 인물 가운데 하나가 틸이다. 그는 이더리움이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월스트리트가 새로운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설계하는 핵심 플랫폼이 될 것이라 확신해왔다. 억만장자 투자자 틸이 이더리움에 투자함으로써 대규모 재무 전략에서 중요한 금융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셈이다.
틸은 기업을 고를 때 PER(주가수익비율)만을 보지 않는다. 그는 성장에 눈을 둔다. PER이 현재 실적에 묶여 있다면 틸이 강조하는 지표는 PEG(주가이익증가비율)이다. PEG는 PER을 이익 성장률로 나눈 값이다. 1 이하라면 시장이 그 기업의 미래 성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의미다. 틸은 바로 이런 기업을 찾아낸다. 그는 ‘제로투원’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만이 세상을 바꾸고 압도적 수익을 만든다”고 썼다. 틸에게 PEG는 그 독점의 씨앗을 가장 빨리 포착하는 도구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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