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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수수께끼, 팔란티어의 앨릭스 카프 [EDITOR's LETTER]

입력 2025-09-01 07:32   수정 2025-09-03 11:15



2024년 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의 최고경영자(CEO)로 팔란티어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 앨릭스 카프를 선정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팔란티어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작년 급성장했다. 시가총액도 1년 새 다섯 배나 올라 작년 말 기준 18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물론 지금은 3700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 최대 기업 삼성전자의 시총(414조원)보다도 크다.

그러나 숫자보다 더 주목을 받은 것은 CEO 카프의 독특한 행보다. 실리콘밸리와 월가, 워싱턴을 오가며 그는 여러 모습을 보였다. 언론과 투자자들이 붙여준 그의 대표적 별명은 두 개다. ‘Billionaire Man of Mystery’(수수께끼의 억만장자) 그리고 ‘Daddy Karp’(카프 아빠)다.

수수께끼의 억만장자. 이 별명은 카프의 이중적이고 모순된 이미지를 압축한다. 그는 억만장자이지만 일반적인 미국 CEO들과 달리 호화 주택이나 슈퍼카를 소유하지 않는다. 운전조차 하지 못해 걸어서 출퇴근하며 보라색 바지와 폭탄머리로 개성 강한 실리콘밸리의 기업가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띈다. 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철학 박사를 받은 드문 배경을 가진 기업가다. 하버마스, 하이데거, 헤겔과 씨름했던 철학도가 어느 날 미국의 안보 기업 CEO가 된 것이다.

그의 말과 행동 역시 늘 호기심과 의문을 자아낸다. 미국 CIA, 국방부와의 계약을 자랑스럽게 언급하는 한편, 자신은 진보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라고 말한다.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에게 투표했다고 공언하면서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선 이스라엘 편을 공개 지지했다. 언론이 ‘수수께끼’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프 아빠. 이 별명에는 신뢰와 의존이 동시에 녹아 있다. 그는 이는 전통의 권위적 리더라기보다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보호자’를 자처한다. 팔란티어 직원들은 그를 단순한 경영자가 아니라 정신적 지주로 여긴다. 사내에서 직접 철학 강의를 하며, 명상과 태극권을 전파하는 CEO는 흔치 않다. 반대로 카프는 공매도 세력을 ‘코카인 중독자’라고 부르며 공격한다. 그래서 장기 투자자들은 그를 ‘믿고 따라갈 아버지 같은 존재’로 묘사하곤 한다.

얼핏 그의 기행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직원과 투자자들은 결국 성과로 증명해온 리더십을 인정한다. 팔란티어가 S&P500 지수에 편입되고, 시가총액이 전통 방산 기업들을 뛰어넘자 이 별명은 더 널리 퍼졌다.

카프의 이력은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창업자와 결이 좀 다르다. 1967년 뉴욕에서 태어나 아버지는 의사, 어머니는 흑인 예술가였다. 난독증을 극복한 뒤 하버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로스쿨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변호사가 되는 길은 포기했다. “관료주의적이고 배금주의적인 분위기가 최악이었다”고 회상할 만큼 제도적 권위를 거부했다. 독일로 건너가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실리콘밸리의 실력자이자 친구인 피터 틸의 제안으로 팔란티어 창업에 합류했다. 사업 구상은 틸이 했지만 운영은 카프의 몫이었다. CIA의 초기 투자와 함께 팔란티어는 곧 ‘국가안보의 소프트웨어 무기’라는 위치를 차지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카프는 비밀리에 키이우로 날아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났다. 팔란티어의 AI 시스템을 무상 제공하겠다고 제안했고, 이는 실제 전황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팔란티어는 이스라엘을 지원했다. 카프는 기술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 기술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방패”라고 선언하며 서구 진영과의 일체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계 활동가들은 “민간인 학살에 동조했다”며 그를 강하게 비판했다.

여기서도 카프의 모순된 면모가 드러난다. 사회주의자적 수사와 자유주의적 가치관을 말하면서도 실질적 행동은 강력한 안보 편향성을 띠는 것이다.

카프는 최근 저서 ‘기술공화국(The Technological Republic)’에서 “원자탄의 시대는 끝났고, AI가 새로운 억지력”이라고 단언했다.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것은 무기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라는 주장이다. 이는 하이데거 철학이 말하는 “기술이 인간 존재를 위협하면서도 구원의 가능성을 지닌다”는 역설을 연상케 한다. 카프에게 팔란티어는 단순한 기업이 아니라 민주주의 진영의 안보 질서를 떠받치는 새로운 군사·기술 제국이다.

그는 괴짜 같고 때로는 위험해 보이지만 동시에 팔란티어라는 거대한 제국을 이끌며 안보와 AI라는 21세기 권력의 핵심을 장악했다. 누군가는 그를 ‘철학자형 CEO’라 부르고, 또 다른 이는 ‘전쟁 기업의 수혜자’라 비판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앨릭스 카프라는 이름이 오늘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논쟁적이고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취재편집부장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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