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충무로에서 시작된 공연 ‘슬립 노 모어’가 화제다. 관객은 가면을 쓰고 공간을 자유롭게 탐색하며 배우와 우연히 조우하고, 익숙한 ‘맥베스’의 이야기를 미스터리하게 체험한다. 2003년 런던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뉴욕과 상하이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며 ‘이머시브 시어터(몰입형 극장)’라는 장르를 각인시켰다.런던에는 이보다 더 거대한 공간에서 동시대적 주제를 다루는 새로운 이머시브 작품이 등장했다. 실험적 그룹 세이지&제스터의 신작 ‘스토어하우스(Storehouse)’. 말 그대로 ‘거대한 보관소’를 뜻하는 이 공연은 축구 경기장보다 큰 9000㎡ 규모 옛 신문 보관 창고를 무대로 삼았다.
공연은 가상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1983년, 네 명의 창립자는 인터넷에 올라오는 모든 말을 기록해 두면 언젠가 단 하나의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시작된 거대한 기록 보관소는 지금 무너지고 있다. 창립자들이 정한 ‘진실 완성(Truthtopia)’의 목표 기한은 이미 지났다. 시스템은 흔들리고, 천장에서는 잉크가 뚝뚝 떨어진다. 관객은 새 임무를 맡은 ‘이사(trustee)’로 위태로운 기록 보관소로 들어간다.
아카이브 안에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조직이 있다. ‘관리인(caretakers)’은 무너져가는 건물을 간신히 버티게 하고, ‘제본공(bookbinders)’은 쏟아지는 데이터를 묶어 거짓과 왜곡을 가려낸다. 제본실 한쪽 프린터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숫자들이 적힌 문서가 끝없이 출력되고, 제본공들은 밀려드는 기록을 처리하느라 쉴 틈이 없다. 반대로 ‘적재자(stackers)’는 속도와 효율을 중시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처음 세운 이상과 충돌한다. 원칙을 지킬지, 닥쳐오는 현실에 맞출지의 갈림길에서 관객은 직접 이 장면으로 들어가 집단의 미래에 참여한다.관객은 이사임을 증명하는 목걸이와 훈련 지침을 건네받은 뒤 대기실에 입장한다. 증명사진을 찍고 이름을 입력하면 방문증이 출력된다. 그룹 단위로 움직이며 각 공간을 탐험하는데, 다른 길을 선택하더라도 다시 합류하는 방식이어서 개인화된 체험이라기보다는 집단적 경험에 가깝다. ‘함께 이 세계에 소환됐다’는 감각이 강화된다.
공간 안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이곳을 지킨 직원들을 만난다. 그들은 각자의 직무와 세계관을 소개하며 왜 아직도 ‘위대한 기록 보관소’가 되지 못했는지를 토로한다. 숲속에 숨겨진 공간에서 단서를 찾고, 배우를 따라 걷고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이머시브 공연만의 독특한 밀착감을 선사한다. 90분 동안 수많은 용어와 선언문, 압축된 역사가 한꺼번에 쏟아져 따라잡기 벅차지만 그 과부하 자체가 공연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이머시브 공연의 확산은 오늘날 사회의 감수성과 맞닿아 있다. 가장 큰 특징은 관객이 직접 참여한다는 점. 객석에 앉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무대로 들어가 공간과 인물, 장면들을 탐험한다. 이 과정에서 촉각 후각 청각 등 복합적인 자극이 더해지며 공연은 재연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겪는 사건으로 기억된다. 마치 디지털 게임의 상호작용적 서사처럼 관객에게 ‘내가 이 이야기의 일부였다’고 느끼게 한다.
‘스토어하우스’는 이 감각적 몰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관객에게 역할과 의무를 부여한다. 이사라는 임무를 맡은 관객은 투표와 의견 제시에 참여하고,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집단의 미래를 선택해야 한다. 선택의 무게와 공동 책임을 몸소 경험하고, 동시에 진실을 가려내는 일이 얼마나 불완전하며 합의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낀다.
이머시브 공연이 주목받는 이유는 새롭고 독특한 형식 때문만은 아니다. 멈출 수 없는 스크롤과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경험, 주체적 개입을 갈망한다. ‘스토어하우스’는 관객을 공연 안에 가두지 않는다. 관객을 ‘소환된 존재’로 부르며 공연이 끝난 후에도 SNS와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이어지도록 했다. 오락적 몰입극을 넘어 사회적 캠페인과 예술적 실험의 경계에 선다. 공연예술은 더 이상 무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주체성을 깨우고, 새로운 대화를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실험이 된다.
런던=정재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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