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타임스 출신 기자 게리 리블린이 쓴 <AI 타이탄들의 전쟁>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는 실리콘밸리 현장을 깊숙이 파고 든다. 저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정보기술(IT)업계를 취재해온 실리콘밸리 전문 기자다. 2017년 전 세계를 뒤흔든 조세회피 탐사보도 '파나마 페이퍼스'로 미국 최고 권위의 보도상인 '퓰리처상'을 공동 수상했다.
저자는 AI 스타트업 '인플렉션 AI'의 흥망성쇠를 따라 무한 경쟁에 돌입한 AI 산업의 생태계를 조명하고 최후의 승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인플렉션 AI는 구글로 인수된 AI 스타트업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인 무스타파 술레이만이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만 등과 공동 설립한 곳이다. 2022년 막대한 투자금과 AI 업계 최고의 인재를 끌어모으며 주목받았다.
이 회사는 영화 'Her'(그녀)에 나오는 AI처럼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화하는 챗봇 '파이'(Pi)로 정보 제공 중심의 챗GPT에 대항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장 점유율은 2%에 채 못 미쳤고, 결국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던 술레이만은 회사를 떠나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했다. 인플렉션 AI의 핵심 인재들도 줄줄이 마이크로소프트로 떠났다.
이처럼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성공 공식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제 AI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에서 버틸 수 있는 자본력이 필수다. 무엇보다 똑똑한 AI를 만들기 위해선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학습시켜야 하는데, 여기엔 빅테크 기업만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 뒤따른다. 인재 확보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저자가 "지금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부분의 AI 스타트업이 살아남아 부자가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비관론을 펼치는 이유다.
반대로 빅테크 기업은 AI 경쟁에서 한발 뒤쳐진 상태에서도 판세를 뒤집을 힘이 있다. 핵심은 자본이다. 애플의 경우 대표적인 'AI 지각생'이었지만 지난해 6월 오픈AI와 제휴해 챗GPT를 아이폰에 탑재한다고 발표하면서 AI 업계 강자로 떠올랐다. 구글과 아마존은 2023년 기준 AI 스타트업 투자 규모에서 상위 10대 투자자 안에 들었다. 엔비디어 역시 같은 해 AI 스타트업 35곳에 총 8억720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저자는 "대기업은 파티에 늦게 도착해도 상석에 앉을 수 있는 귀빈"이라며 "빅테크는 설령 손실을 보더라도 여전히 업계의 승자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전망한다.
일부 AI 스타트업이 자본력을 갖춘 빅테크에 앞설 수 있었던 비결은 속도에 있다. 2022년 11월 30일 오픈AI는 보도자료 한 장 없이 세상을 뒤흔든 챗GPT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시만 해도 회사 내부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챗GPT가 제공하는 정보에 일부 오류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출시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이용자 100만명을 확보했다. 넷플릭스가 3년 반 동안 거둔 성과였다. 저자는 오픈AI의 창립 멤버 리드 호프먼의 말을 빌어 이렇게 적었다. "스타트업이 출시한 제품이 그것을 만든 사람의 마음에 들 정도면 이미 출시 시기를 놓친 것이다." 이처럼 오픈AI는 완벽한 제품을 출시하는 것보다 시장 선점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책에는 직접 취재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실리콘밸리의 분위기도 생생히 담겨있다. 가령 오픈AI 초기 투자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오픈AI의 대주주가 되길 원했는데 "(오픈AI CEO인)샘 올트먼은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머스크를 상사로 모실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체질 개선에 성공한 인도 출신의 사티아 나델라 CEO는 심리학자를 경영진에 합류시키며 사내 문화부터 바꾸려고 노력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에 반해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인 빌 게이츠는 "직원들에게 '그런 바보 같은 소리는 처음 듣는다'라고 외치는 회사였고, 그 뒤에 치욕적인 욕설이 나오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이 책은 특정 AI 기업에 투자하라고 조언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과 자본, 기술이 교차하는 글로벌 AI 산업의 역학 관계를 조명하며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눈을 키워준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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