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네치아 리도섬이 한국 영화로 물들었다.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셋째날 가장 눈부시게 빛난 별은 박찬욱과 함께 레드카펫을 밟은 ‘어쩔수가없다’ 사단이었다. 레드카펫을 밟는 순간부터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10분간의 박수갈채까지. 영화계는 20년 만에 경쟁 부문 후보로 베니스에 돌아온 박 감독의 귀환을 뜨겁게 환영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풍자극’이란 해외 평가와 함께 현지에선 “박찬욱의 미장센이 고스란히 담겼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지난 29일 베니스영화제가 열린 리도섬 ‘팔라초 델 시네마’(영화의 궁전) 일대는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월드프리미어 상영으로 달아올랐다. 저녁이 되자 정장과 드레스를 차려입은 인파로 붐비기 시작했다. 오후 9시 45분부터 영화제 메인 극장 ‘살라 그란데’에서 진행된 시사회를 보러 온 관객들이다. 시사에 앞서 열리는 레드카펫 행사에서 박 감독 및 배우들과 만나려는 영화 팬도 몰렸다.
박 감독과 배우들이 레드카펫을 지나 살라 그란데 2층에 자리를 잡자 1000석 규모의 극장 좌석은 따라 들어온 관객들로 순식간에 만석을 이뤘다. 영화가 시작되자 객석은 숨죽였고, 밤 12시를 훌쩍 지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관객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10분에 가까운 박수갈채가 이어지자 ‘어쩔수가없다’팀도 일어나 화답했고, 영화 총괄프로듀서로 함께 객석에 있던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이 모습을 미소 띤 채 바라봤다.
‘어쩔수가없다’가 공개된 후 해외 영화계는 호평을 내놓고 있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는 “박찬욱이 현존하는 가장 품위 있는 감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이자 매혹적인 블랙 코미디”라고 보도했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박 감독 최고의 걸작은 아닐 수 있지만, 지금까지 베니스 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 중에선 가장 뛰어난 영화”라고 평가했다. 이병헌의 연기력에 대한 찬사도 쏟아졌다. 미국의 영화 전문매체 데드라인은 “이병헌의 탁월한 코미디 감각을 입증하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해외 영화계의 뜨거운 반응은 일찌감치 베니스영화제 현장에서 예고됐다. 이날 오전 두 차례에 걸쳐 열린 프레스 시사에서부터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 일각에선 수상 가능성을 예상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한 관객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다”며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을 잘 표현했다”고 말했다. 앞서 알베르토 바르베라 예술감독이 올해 영화제를 이해하는 ‘필 루즈(fil rouge·실마리)’로 밝힌 테마인 ‘괴물’과 영화의 내용 및 주제의식이 절묘하게 겹친다는 점에서다.박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인 ‘어쩔수가없다’는 미국 소설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끼>를 원작 삼아 박 감독만의 영화적 미장센을 섞은 작품이다. 중년 회사원 만수(이병헌 역)가 덜컥 해고된 후 가족의 안정적인 생활을 지키려고 재취업을 결심하고, 구직 경쟁자를 제거하는 이야기가 얼개다. 박 감독이 오래전부터 영화로 제작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9월 17일 개막하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국내에서 관객과 처음 만난다. 국내 공식 개봉은 9월 24일이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박 감독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 이후로) 20년 만에 베니스 경쟁에 오게 됐는데,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도 20년이 됐다”며 “관객에게 처음 선보이는 자리였는데 모두 재미있다고 해준 말이 진심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베네치아=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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