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02일 07:3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금융감독원이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MBK파트너스에 대한 재조사에 나서며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2015년 홈플러스 인수 과정에서 발행된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핵심 쟁점으로 삼아, 국민연금을 사실상 전면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모양새다. 투자자 보호와 사모펀드(PEF) 운용 행태 개선이라는 명분이지만, 과도한 규제로 인해 국내 PEF 시장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달 26일 정기 임원회의에서 “국민연금과 협업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소액주주 권리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발언도 덧붙였다. 국민연금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이 같은 발언 사실을 공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기 임원회의는 금감원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통상 기관 운영과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내부 회의 발언이라 해도 기관장이 직접 국민연금과의 공조를 공개 지시한 것은 의미가 크다. 홈플러스 인수 자금의 일부를 책임졌던 국민연금이 피해자로 부각될수록 MBK의 불건전 행위 입증은 수월해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감원이 주목하는 핵심은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인수 당시 발행한 RCPS다. RCPS는 만기 상환권과 보통주 전환권이 결합된 증권으로, 채권과 주식의 성격을 동시에 가진다. MBK는 2015년 홈플러스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RCPS를 발행했고, 국민연금은 여기에 5826억원을 투자했다. 조건은 만기 5년에 배당 3%, 만기이자율 연 복리 9%로 저금리 기조 속에서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올해 2월 홈플러스 신용등급 강등 직전에 벌어진 조치다. MBK파트너스는 RCPS 상환권을 홈플러스로 넘기며 회계상 부채를 자본으로 전환했다. 장부상 홈플러스의 부채비율은 개선됐지만, 국민연금은 후순위로 밀리며 원금 회수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금감원은 이를 불건전영업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고 보고 현장 조사를 시행한 뒤, 이를 토대로 작성한 검사의견서를 최근 MBK파트너스 측에 발송했다.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같은 판단을 내릴 경우, MBK파트너스는 기관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 또한 법령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위탁운용사의 선정을 취소할 수 있어 파급력은 배가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이찬진 원장의 개인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그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으로 활동하던 2021년에도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운영 방식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이 같은 시각의 연장선에서 취임 직후부터 강도 높은 제재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감원의 행보가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은 법적으로 국민연금을 감독할 권한이 없다. 그런데도 ‘공조’를 앞세워 사실상 조사 파트너로 삼는다면, 외부 압력이 과도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될 경우 감사원 감사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민연금은 이미 대체투자 내부 규정을 개정하고 리스크 관리 장치를 강화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왔다. 한 국민연금 출신 자본시장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장기투자자로서 정치·사회적 압력에서 독립돼야 한다”며 “외부 개입이 지나치면 기금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업계에서도 금감원의 강경 제재 기조가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MBK파트너스의 자금 대부분은 글로벌 연기금·국부펀드 등 해외 투자자들이 댄다. 국내 규제가 실질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코리아 리스크’로 인식되면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기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모펀드가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M&A 시장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개별 거래의 손실 가능성을 규제기관이 개입해 뒤집으려 하면 오히려 시장 신뢰가 흔들린다”며 “외국계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 자체를 위험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MBK파트너스 측은 금감원 조사에 대해 "홈플러스의 신용등급 하락 방지와 이로 인한 SPC 보유 홈플러스 지분 가치 보전을 위해 RCPS 조건 변경에 동의한 것"이라며 "국민연금을 포함한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조치였다"고 밝혔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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