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상대로다. 2025. 8. 24.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후 법 내용의 모호성, 기업과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분쟁의 빈발 등에 대한 예상과 우려로 한 주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6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을 두었지만, 수십년 간 자리잡은 노동법과 노사관계의 근본체계 변경을 한 학기만에 독파하는 것은 난도가 너무 높다. 학습을 위한 참고서라도 있다면 가능할지 모르나, 우선 법부터 만들고 나중에 생각하자고 한 상황이라 정부는 입법 후 부랴부랴 판단기준 및 가이드라인 등 참고서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데, 언제 참고서가 나올지 모르겠고, 시행령의 위임 없는 비공인 참고서를 법원이 인정해줄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노란봉투법은 입법되었고 6개월 후면 시행이다. 기존에는 직접적인 계약관계를 매개로 노사관계가 형성되었으나 이제 계약관계가 없어도 ‘실질적 지배력’으로 노사관계가 형성된다. 이로써 지주사 ? 계열사, 원청 ? 하청 ? N차 하청, 사내도급/사외도급, 용역, 위탁 등 불문하고 노사관계가 형성될 수 있고, 과거 노사관계가 1:1의 대항적 관계에서, 1: 多 혹은 多 대 多의 다자간 참여형 관계로 변모될 것이다. 자회사 및 손자회사, 하청 및 N차하청, 하나의 교섭단위 내 수개의 하청, 원청 및 하청 내 복수노조들 등 노사관계의 당사자가 몇 명이나 될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가장 단순한 관계를 상정해도 원청 사업주, 원청 노조, 하청 사업주, 하청 노조 4자가 노사관계 당사자 또는 이해관계자들이 될 것이다.
그런데 노란봉투법 판에 원청의 하청 근로자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 원청과 하청 노조 사이의 교섭방법에 관한 논의나 전망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와중에 정작 중요한 이해당사자인 하청 사업주와 원청 노조는 존재감이 없다. 이들이 바라보는 노란봉투법은 어떨까.
하청 사업의 규모나 원청과의 관계 등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하청 사업주로서는 일단 노조법상 사업주로서의 지위를 일부 박탈당한 셈이다. 원청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고 인정되어 원청과 하청 노조 사이에 단체교섭이 이루어지면, 하청 사업주로서는 사업장 내 노사관계 당사자로서 단체교섭을 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리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법은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을 교섭단위로 하고 있고(노동조합법 제29조의3), 교섭단위 내에서 사용자는 독점적·배타적으로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에 관한 권한을 가지는데 노란봉투법으로 하청 노동조합이 직접 원청과 단체교섭을 하게 되면 이러한 하청 사업주의 법적 지위 및 권리가 영향을 받게 된다. 단체교섭이 의무이지 무슨 권한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적어도 하나의 사업장에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통하여 근로조건 및 노사관계에 관한 제반사항을 정하는 법적 지위에 있고 하청 노동조합이 원청과 단체교섭을 하는지는 하청 사업주의 법률상의 이해관계에도 해당한다는 점은 법원에서도 인정한 바 있다(서울고등법원 2024. 1. 24. 선고 2023누34646 판결)
또한 원청과 하청 노동조합 사이에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그 내용에 따라 하청 사업주와 하청 근로자들의 근로계약의 내용을 변경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계약 내용을 정하고 변경할 계약 당사자로서의 지위에도 침해를 받고, 변경되는 내용에 따라서는 경영권 침해가 될 수도 있고, 공정거래영역인 하도급법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만약 위장도급이나 불법파견으로 볼 수 있는 경우라면 원래 실체가 없었거나(위장도급) 파견법을 위반했으니(불법파견) 그럴 만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면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사실상의 영향력에 의해 법적 지위과 권한에 침해를 받는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나, 원청과 하청 노조 사이의 단체교섭에 하청도 참여하여 소위 공동사업주로서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고 하면, 하청 사업주로서는 원청과 공동사업주로서 하는 단체교섭에 참여하고, (원청은 실질적 지배력이 없는 영역으로) 하청 사업주가 독자적으로 해야 하는 단체교섭에도 참여하는 등 품이 이중으로 드는 어려움이 있다. 현재 쟁점 논의에서 거의 배제되어 있는 하청 사업주의 법적, 현실적 어려움도 앞으로 충분히 고려가 되어야 할 것이다.
원청 노조는 어떨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가장 난감한 이해관계자 아닐까.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 상향이라는 명분 아래 노란봉투법이 통과되었지만, 원청 노조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그러한 명분이 달성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당장 6개월 뒤 4자간 하나의 교섭단위로 공동 단체교섭을 해야 할 수도 있고, 원청 노조의 단체교섭과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이 분리되더라도 사용자가 동일한 이상 상호간의 교섭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4자간 하나의 교섭단위로 공동 단체교섭을 한다면 누가 교대노조가 될지, 교대노조의 지위를 유지하더라도 숫자가 늘어난 소수노조에 대한 공정대표의무의 이행, 교섭단위를 둘러싼 다툼 등 원청 노조의 입장에서도 신경 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사업장에 따라 원청 노조를 기득권층으로 보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노란봉투법의 적용와 운영과정에서 하청 노조의 근로조건 향상을 둘러싼 노노갈등으로 제2의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원청 노조 역시 현재 논란 속에 존재감이 없거나 침묵을 하고 있는데, 남은 기간 이해당사자로서 곧 전면에 등장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실질적 지배력이라는 여섯 글자의 해석과 운영 과정에서 펼쳐질 변화에 주목하고 이해당사자들 사이에 슬기로운 대처가 있기를 기대한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인사노무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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