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핵심 사회보장제도이며 복잡한 청구·심사 절차 속에서 근로자를 대리할 전문 자격사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관련하여 최근 산재 보상대리를 국선화하자는 논의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재해 근로자 보호 강화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리적·제도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이하에서는 국선화 논의의 법리적 문제점, 국민 권익과 서비스 질 측면의 한계, 그리고 실질적 권리 구제를 위한 대안을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1. 법리적 측면에서의 문제점
첫째, 산업재해 보상대리 업무의 국선화는 국선대리 제도의 본질적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국선대리인 제도는 주로 형사소송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거나, 헌법소원심판에서 변호사를 선임할 자력이 없는 청구인을 구제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다. 즉, 국가의 형벌권 행사나 공권력에 의해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국민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예외적 장치인 것이다. 반면, 산업재해 보상 청구는 사회보험적 급여를 구하는 행정절차의 성격을 가지므로, 이를 형사 절차나 헌법소원과 동일선상에서 보고 국선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제도의 근본 취지를 벗어난 것이다.
둘째, 현행 법률체계의 발전 방향과 충돌하는 것이다. 우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적용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왔다. 과거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특수형태근로종사자를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고, 최근에는 ‘전속성’ 요건을 폐지하여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노무제공자’까지 보호 범위를 넓히는 등 입법을 통해 제도를 꾸준히 개선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현행 법체계가 사회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진적 개선이 아닌, 기존 자격사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국선대리 제도의 전면적 도입은 이러한 입법적 노력과 상충되는 것이다.
셋째, 헌법상 평등원칙 및 직업선택의 자유와 관련하여 위헌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입법에서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형성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경제질서의 기본은 시장경제 자본주의에 두고 있다. 원칙적으로 모든 서비스나 상품의 가격과 품질은 자유경쟁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며, 이는 법률적 서비스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국가가 국선대리 제도를 도입하여 특정한 영역의 대리 업무에 직접 개입한다면, 이는 곧 자유시장의 가격과 경쟁구조를 인위적으로 왜곡하는 결과를 낳는다. 국가는 사실상 서비스의 가격과 공급 방식을 강제적으로 결정하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 법률 소비자의 후생(재해 근로자의 권익 등)을 저하시킬 위험이 있다. 즉, 국선제도는 단기적으로는 무상 지원의 외양을 띠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비스 품질과 다양성, 경쟁을 통한 발전 가능성을 제약함으로써 결국 근로자 본인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2. 국민 권익 및 서비스 질의 저하 문제
국선대리인 제도 도입은 재해 근로자에게 일견 무상 지원이라는 혜택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서비스 질 저하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국선대리 업무는 국가 재정으로 보수가 획일적으로 책정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사건의 난이도나 복잡성과 무관하게 동일한 수준의 대리만 제공하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이는 재해자별 상황에 맞춘 맞춤형 상담과 정교한 입증 활동보다는 형식적인 절차 대리에 그치게 되고 오히려 재해 근로자의 권리구제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재해 근로자 입장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를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제한된다. 산업재해 사건은 해당 재해를 입은 근로자에게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인정될 만큼 근로자의 권리·의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사건에서 자신의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해 줄 전문가를 직접 선택하지 못하고 국가가 지정하는 대리인에게 의존해야 한다면 이는 재해 근로자의 실질적인 권리 행사를 제약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3. 실질적 권리 구제를 위한 대안 : 성급한 국선화보다는 제도적 보완으로
산업재해 보상대리 업무의 국선화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진정으로 재해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현행 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개선해야 한다. 과거 국가인권위원회가 ▲ 산재보험급여 신청서의 사업주 날인 제도 폐지, ▲ 업무상 질병의 입증책임 완화, ▲ 질병 인정 기준의 지속적 보완 등을 권고한 것은 제도적 개선이 권리구제에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경로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절차적·실체적 장벽을 낮추는 것이 재해 근로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권리구제를 실질화하는 길이다.
더 나아가 현행 산업재해 보상대리 제도는 재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전문성을 갖춘 자격사에게 합법적 대리권을 부여함으로써 그 자격과 역량이 없는 비전문가나 무자격자의 무분별한 개입을 차단하고 있다. 이는 재해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안전장치다. 국선화로 국가가 직접 대리인을 지정하는 방식은 이러한 전문성 체계를 흔들 수 있으며 오히려 근로자 권익 보호의 수준을 저하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성급한 국선화가 아니라 이미 제도적으로 안착된 제도를 보완·육성하여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물론 시장 내에서 일부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 예컨대 이른바 ‘산재 카르텔’이나 ‘브로커’와 같은 불법 수임, 부당한 금전거래 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제도의 본질적 문제라기보다 일부 일탈 사례에 불과하므로 국선화로 제도를 전면 변경할 사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자격 취소, 형사처벌 등 엄정한 법적 조치를 통해 배제해야 하며 그로써 기존 시장의 건전성과 서비스 품질을 유지·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국 재해 근로자의 실질적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국선화가 아니라 현행 제도를 보완·강화하고 불법을 엄단하는 방식으로 시장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자유경쟁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동시에 근로자의 권익을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방향이다.
글 공인노무사 / 법학박사 박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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