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롯데관광개발의 ‘제주드림타워’가 국내 카지노 시장을 평정했습니다. 2025년 7월 기준 월간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90%나 증가한 434억원에 달했는데요. 이는 국내 16곳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 가운데 가장 많은 겁니다. 기존 1위 파라다이스시티의 7월 매출 404억원을 제쳤어요.
물론 파라다이스는 파라다이스시티뿐 아니라 서울 워커힐호텔과 부산, 제주에도 업장을 운영하고 있어 총합으로 하면 드림타워보다 크긴 합니다. 하지만 단일 업장 기준이라 해도 파라다이스가 1위 자리를 내준 건 충격이죠.
왜냐하면 제주드림타워는 2021년 개장한 신생 카지노인 데다 처음 세워질 때만 해도 이렇게 잘될 것으로 예측한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대부분은 곧 망할 것이라고 했어요. 회사 덩치에 비해 과도하게 빚을 끌어다 썼고 이 빚을 갚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빚은 지금도 많아요. 하지만 지금은 망한다는 쪽보다는 잘될 것으로 기대하는 쪽이 더 많아요. 롯데관광개발의 극적인 회생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용산 역세권 개발 무산 후 파산 위기
1971년 ‘아진관광’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1978년 롯데에 인수되면서 ‘롯데관광개발’이 됐어요. 하지만 1982년 계열 분리를 했고 그래서 현재는 롯데와 아무 관련이 없어요.
그럼에도 아직까지 ‘롯데’란 상호를 쓰는 이유는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의 아내 신정희 씨가 신격호 롯데 창업주의 여동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김기병 회장은 신격호 회장의 매제가 됩니다. 신동빈 현 롯데 회장의 고모부이기도 하고요.
혈연 관계에 있다고 해서 롯데와 사이가 원만한 것은 아니었어요. 롯데는 2007년 롯데관광개발에 롯데 로고를 쓰지 말라고 소송을 냈어요. 또 사명에서도 롯데를 빼줄 것도 요구했죠. 결론적으로 로고는 뺐고 사명은 안 뺐어요.
김기병 회장은 원래 산업부 기획지도국장을 지낸 엘리트 공무원이었어요. 1971년 경영자로 변신한 뒤엔 굵직한 사업을 많이 벌였어요. 우선 한국 최초의 시내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을 1979년 열었어요. 또 서울 광화문광장 앞 서울파이낸스센터도 지었죠. 2000년대 중반엔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으로 불렸던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도 추진합니다. 용산 철도 정비창 부지를 개발해 롯데월드타워보다 높은 랜드마크 타워를 짓고 아파트와 쇼핑몰, 호텔, 백화점도 넣을 예정이었어요. 당시 책정된 사업비는 무려 31조원이나 했어요.
이 개발 사업은 다 아시는 대로 무산됐어요. 지금도 부지가 방치되어 있죠.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고, 부지 소유주인 코레일 수장도 바뀌었고, 서울시장이 오세훈에서 박원순으로 변경되면서 사업 동력을 잃었어요. 이 일로 롯데관광개발은 빚더미에 올랐죠. 사업 무산으로 수천억원의 손실을 봤거든요. 빚을 갚지 못해 법정관리에 놓이기도 했고요.
용산 사업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김기병 회장이 새롭게 추진한 프로젝트가 제주드림타워였어요. 제주에서 가장 번화가에 속하는 노형동에 제주에서 가장 높은 쌍둥이 빌딩을 짓고 세계적인 호텔을 들인다는 계획이었어요.
이 사업도 많은 난관이 있었어요. 제주공항 인근이라 보안과 안전 문제가 있었고 제주에서 가장 붐비는 곳이라 교통 문제도 컸죠. 여기에 한라산 조망권을 해친다고 해서 환경 문제도 제기됐어요. 이 탓에 롯데관광개발은 수백억원의 상생 기금을 내야 했고 빌딩 높이도 기존 62층에서 32층으로 수정해야 했어요.
무엇보다 1조6000억원에 이르는 사업비 마련이 가장 큰 난제였는데 이것도 풀어냈어요. 중국의 부동산 개발업체 녹지그룹을 끌어들인 것이었죠. 사업비의 약 60%를 롯데관광개발이, 40%를 녹지가 담당해 자금 부담을 낮췄어요.
드림타워를 다 지은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했어요. 코로나 사태로 관광객이 뚝 끊긴 겁니다. 2020년 말부터 하나씩 시설물 문을 열었는데 손가락만 빨고 있었어요. 이듬해인 2021년 6월 카지노를 개장했을 때도 비슷했어요. 드림타워 카지노는 파라다이가 제주 중문단지 롯데호텔에서 운영하던 카지노 사업권을 인수한 것인데요. 문을 연 뒤 초기 2년간 롯데관광개발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어요.
빚을 1조원 가까이 끌어다 썼는데 장사를 못 하니 한 해 적자가 2000억원을 넘겼어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 연속으로 매년 당기순손실이 2000억원 넘게 발생했어요. 빚을 빚으로 막는 ‘리파이낸싱’에 나서야 했는데 금리가 10%를 넘어갈 정도로 조건도 좋지 않았죠
◆코로나 사태 후 중국인 몰려오다
이렇게 간신히 연명하던 롯데관광개발이 살아난 건 역설적으로 코로나 덕분이었어요. 코로나 탓에 2~3년간 여행을 못 나간 사람들이 하늘길이 열리자 폭발적으로 나가기 시작한 겁니다. 제주드림타워는 중국인을 타깃으로 했는데 이게 제대로 들어 맞았어요. 중국인 관광객이 2023년부터 급격히 증가해 그해 경쟁사인 신화월드마저 제쳤어요.
실적만 봐도 금세 드러나요. 2020년 167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이 2021년 1000억원을 넘겼고 2023년에는 단숨에 3000억원대 수준에 이르렀어요. 작년엔 4000억원마저 돌파했죠. 증권업계에선 올해 6000억원을 넘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수익성도 극적으로 개선되고 있어요. 2000억원을 넘겼던 순손실액이 작년에 1000억원 수준으로 축소됐고, 올 들어 2분기에는 처음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했어요. 이자 비용을 감당하고 남을 만큼 장사가 잘된다는 얘깁니다. 주가도 반응하고 있어요. 올 들어 9월 초 기준 주가가 두 배 이상 뛰었어요. 7000원 선이던 게 1만6000원을 넘었죠.
사실 제주드림타워는 중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많이 갖고 있어요. 우선 제주도는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어요. 카지노만 하는 손님이면 번거롭게 비자 받아서 인천 파라다이스나 GKL 같은 곳에 가느니 제주에 가는 것이 편하죠. 중국인은 호텔 브랜드 중 하얏트를 유독 선호하는데요. 드림타워 내 호텔 1600실을 운영하는 곳이 그랜드하얏트입니다.
카지노 운영도 마카오 시스템으로 돌리고 있어요. 요즘 마카오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강력한 카지노 단속 의지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마카오를 방문하던 중국인 일부가 드림타워로 옮긴 겁니다. 드림타워는 마카오 카지노 임직원을 대거 영입하고 카지노 테이블과 머신도 마카오 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여기에 더해 입지도 장점으로 부상했어요. 카지노 손님은 다른 관광을 잘 하지 않고 카지노만 하고 바로 떠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공항에서 가까운 게 굉장히 중요하죠. 드림타워는 제주공항에서 차로 10분밖에 안 걸리기 때문에 지리적 이점이 있어요. 당초 개발할 때 발목을 잡았던 입지가 반대로 장점이 되고 있는 것이죠. 파라다이스가 워커힐호텔 내 카지노 업장을 빼고 싶어하는 것도 공항에서 너무 멀어서 그래요. 그만큼 카지노는 공항과 거리가 중요해요.
여기에 더해 신화월드가 시진핑 주석의 경쟁자였던 상하이방 자금이 흘러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인 VIP 고객이 방문을 꺼리고 있어요. VIP는 중국 내에서도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라 이런 정치적 이슈에 민감해요.
◆대규모 차입금 등 리스크 여전
물론 불안 요인도 여럿 있어요. 우선 빚이 너무 많아요. 차입금만 1조1400억원에 달해요. 전환사채가 약 2000억원, 장기차입금 9400억원 수준이죠. 장사가 잘되면 금리 조건이 좋아져 이자 부담은 계속 감소할 겁니다. 또 유입된 현금으로 일부 채무를 갚는 것도 가능하죠. 다만 이건 앞으로 몇 년간 지속적으로 좋아진다는 가정이 있어야 해요.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상대로 제주뿐 아니라 한국 내 무비자 정책이 시행되는 것도 어떻게 될지 봐야 해요. 정부가 2025년 9월 말부터 2026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어요. 제주에 집중된 중국인 특수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할 여지가 있어요.
경영권 승계도 해야 해요. 김기병 회장이 22.6%의 지분을 보유해 여전히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있어요. 김 회장은 1938년생으로 87세입니다. 동화면세점 경영을 맡고 있는 첫째 아들 김한성 대표 지분은 2.6%, 드림타워를 맡고 있는 김한준 대표 지분은 1.2%에 불과해요.
드림타워가 일으킨 ‘반전 드라마’는 이제 시작입니다. 한국 카지노 산업을 정말 바꿔 놓을지 궁금합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jkah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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