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임금체불을 ‘임금 절도’로 규정하며 대대적인 근절 대책을 내놨다. 하도급이 만연한 건설업 등을 중심으로 인건비 관리를 강화하고 5인 미만 사업장에도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하는 등 제도적 틀을 전면 재설계 하는 내용이 골자다. 사상 처음 2조원을 넘어선 임금체불액을 임기 내 절반 수준인 1조원으로 줄이기 위해 산업구조까지 손보는 강경 처방에 나섰다는 평가다.
2일 정부는 '임금체불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근로감독 등 사법적 처벌 강화가 중심이었던 기존 대책과 달리 하도급 단계에서 임금 관리 방식을 강화하는 등 체불 발생 여지를 줄이는 데 방점이 찍혔다.
고용부에 따르면 임금체불 규모는 지난해 2조488억원으로 사상 처음 2조 원을 넘어섰고 올해 상반기에도 1조1005억 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해 6월 기준 역대 최대 금액을 경신했다. 사업장 규모별로는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전체 체불의 67%며 5인 미만 사업장에서만 3278억 원(30%)이 발생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체불액은 855억 원으로 1년 새 51.4% 늘어났다. 피해 노동자 수도 1만7000명으로 전체 체불 근로자의 12.5%에 달한다. 농촌·영세 제조업에 고용허가제 외국인이 집중된 게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노동자 체불도 많다고 한다”며 “임금을 떼먹힌 외국인 노동자는 출국을 보류해 주고, 돈 받을 때까지 기회를 주는 것도 검토해 봐야 할 것 같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구조적 임금체불을 근절하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 먼저 다단계 하도급이 일반화된 건설·조선업을 중심으로 '임금 구분 지급제'를 도입한다. 하도급 비용을 통으로 지급하는 관행을 깨고 '인건비'를 반드시 별도 항목으로 표시해 지급하도록 법제화한다. 이를 통해 원청이 하도급업체의 인건비 사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임금이 다른 비용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는다. 정부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적용 업종을 점차 넓힐 계획이다.
또 일부 공공사업에서 운영되는 발주자 직접지급 제도(전자대금지급시스템)를 민간 영역까지 확대한다. 원사업자가 하도급업체에 대금을 지급할 때 제3자인 금융기관의 전자 시스템을 통해 대금이 지급되도록 의무화하는 방식이다.
전체 체불액의 40%를 차지하는 퇴직금 체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퇴직연금 의무화'도 추진한다. 퇴직연금은 퇴직 시 일시에 지급하는 퇴직금과 달리 사업주가 퇴직금을 사외 금융기관에 미리 적립해 두는 제도라 체불 가능성이 줄어든다. 전체 체불액 중 30%를 차지하는 5인미만 사업장에 퇴직연금 납부를 의무화해야 실효성이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영세사업장의 경우 매월 퇴직연금 비용을 부담해야 해 재무적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명단공개 사업주가 재차 체불을 저지르면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제외하고 피해 근로자가 처벌 의사를 철회하더라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한다. 또 과태료나 과징금 등 경제적 제재를 병행해 체불임금 변제 압박을 강화한다. 고액 체불이나 불법성이 강한 체불은 1회 발생해도 체불임금의 미청산 기간 중 정책자금융자, 보조·지원사업 등을 제한한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를 집중 단속기간으로 정해 근로감독 대상을 1만5000개소에서 2만7000개소로 대폭 확대했다. 국토교통부·지자체와 합동 감독을 실시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반의사불벌 폐지 등을 포함해 더 강력한 방안까지도 유관부처 논의를 통해 추진하겠다"며 "체불행위는 임금절도이자 중대한 경제적 범죄라는 인식이 현장에 확실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곽용희 기자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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