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이징에 집결했다. 이들은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나란히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북한 중국 러시아 정상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66년 만이다. 냉전시절 공산권 진영 주축이던 이들은 함께 모여 세를 과시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진영 국가들에 함께 대항하겠다는 상징적 장면을 연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면서 중국과 러시아 일방에 밀착하지 않는 북한판 ‘안러경중’(안보는 러시아와, 경제는 중국과 밀착한다는 의미) 등거리 외교 전략을 구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에 대항하는 북·중·러
2일 외교가에 따르면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3일 열리는 전승절 열병식에선 북·중·러 정상을 비롯해 이란 쿠바 파키스탄 벨라루스 등 미국과 대립하는 국가 정상들이 대거 참석한다. 김정은은 열병식 망루 중앙 시 주석 왼쪽에, 푸틴 대통령은 오른쪽에 자리해 ‘신(新)냉전 구도’가 부각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톈안먼광장에는 미국령 괌을 겨냥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둥펑-26(DF-21), 미 7함대를 노리는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둥펑(DF)-100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 등 각종 첨단 무기가 등장한다.중국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시절까지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러시아·북한과의 밀착을 부담스러워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이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을 상대로 강한 압력을 행사하자 중국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북한 핵을 지렛대 삼아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중국 러시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핵보유국 위상과 동북아에서의 전략적 지위, 중견 핵국가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려고 한다”며 “이런 김정은을 시 주석이 환대하는 것은 사실상 간접적인 북한 핵 보유 지지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대한다’며 지난 1일까지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열병식에 불참하고 귀국했다. 미국과의 안보적 긴장이 한층 커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중·러 사이 북의 등거리 외교
김정은이 반미 진영에 적극 동참하면서도 북한판 안러경중 전략을 동시에 구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날 발간한 ‘김정은의 중국 전승절 80주년 참석 의도와 파장’ 보고서를 통해 김정은의 이번 방중을 ‘우크라이나 파병 후 러시아 일변도로 치우친 대외 관계를 극복하고 다시 균형을 잡으려는 움직임’으로 분석했다. 앞으로 있을지 모르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차원도 있다. 김정은은 2018년·2019년에도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상호관계를 개선한 후 미·북 정상회담에 나섰다.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군사·안보 분야에서 러시아와 협력을 지속하면서 경제 분야에서 중국과 관계를 회복하는 북한판 안러경중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줄어든다면 무기 기술과 석유·식량 지원 등이 급감할 수 있어서다.
이현일 기자/베이징=김은정 특파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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