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번화가 시부야역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인 도쿄대 생산기술연구소에 들어서자 눈길 닿는 곳마다 외국인 유학생들로 북적였다. 반도체 및 정밀가공제품 연구를 위한 클린룸, 박테리아를 연구하는 P2레벨 생체실험실에선 프랑스 유학생들이 연구하고 있었다. 교수 연구실은 물론 구내식당에서는 영어와 프랑스어가 일본어보다 더 많이 들렸다. 외국인을 찾아보기 힘든 혼고캠퍼스와 달리 프랑스, 중국, 인도 등 각국 학생이 몰려드는 ‘인재 용광로’ 같았다.고마바캠퍼스에 자리잡은 생산기술연구소는 일본 우주공학의 문을 연 초소형 로켓 ‘연필 로켓’, 일본 자동차산업의 중흥을 이끈 닛산의 ‘자동변속기’ 등이 개발된 산업기술의 메카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대학원생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8.2%로 도쿄대 학부(15%)의 세 배가 넘는다. 도시요시 히로시 소장은 “국제화가 연구소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생산기술연구소의 외국인 비율이 이토록 높은 것은 오랜 국제 협력의 역사 덕분이다. 1995년 이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와 상호 방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대표 사례다. 초정밀공학기계 연구를 위해 30년째 마이크로메카트로닉스통합연구센터(LIMMS)를 공동 운영하고 있다. LIMMS 소속 김범준 도쿄대 교수는 “일본의 정밀기계 제조능력과 프랑스의 화학·생물학 원천 기술이 결합된 국제 공동 연구의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간 연구소를 방문한 해외 연구원은 380명이 넘는다. 한 번 방문하면 2~3년간 공동연구를 한다. 도시요시 소장이 “생산기술연구소는 도쿄에 있지만 유럽의 연구기관이나 다름없다”고 자평할 정도로 두 기관은 끈끈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강한 산학 연계 역시 유학생이 몰리는 배경 중 하나다. 생산기술연구소는 굴지의 일본 대기업인 도요타자동차·미쓰비시 등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요시카와 노부히로 혁신시뮬레이션연구센터(CISS) 소장은 “일본 대기업 취업 가능성은 유학생들이 일본에 오는 주된 동기 중 하나며 도쿄대의 큰 장점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간 외국인 유학생 유치에 다소 소홀하다는 평가를 받은 도쿄대는 최근 180도 바뀐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대로는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인재 블랙홀’이 된 미국, 풍부한 자국 인력풀을 보유한 중국과의 공학 인재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다.
도쿄대와 문부과학성은 올해부터 일본에서 유학하는 인도 유학생 약 270명에게 연간 300만엔을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산학 연계도 강화해 2028년까지 일본 내 인도 유학생을 지금의 두 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기준 도쿄대에서 유학 중인 인도 학생은 83명으로 전체 유학생의 1.6% 수준이다.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태국·필리핀) 출신 유학생은 195명(3.72%) 정도다. 인도·동남아 출신 유학생이 중국(67.7%), 한국(6.8%) 등에 비해 적은 것은 상대적으로 먼 거리와 언어 장벽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런 장벽을 허물기 위해 도쿄대는 지난해 영어를 100% 사용하는 ‘5년제 융합형 교육과정’ 칼리지 오브 디자인을 신설했다. 해외 고교의 졸업 일정에 맞춰 4월이 아니라 9월에 학기를 시작한다. 정원 100명 중 절반은 해외 유학생을 받는다. 오카베 도루 도쿄대 공대 교수는 “커리큘럼을 영미권에 맞게 구성함에 따라 인도와 필리핀 등 영어권 국가 유학생을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도쿄=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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